반응형

0.

내 탈방 시기가 괜찮은 타이밍이었나봄.

9월 13일에 방탄소년단의 일본앨범에 '아키모토 야스시'라는 우익, 여성 혐오 작사가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보도됨. 일반적인 일본 연예인 우익이 아니라 아키모토 야스시는 정치적인 행보나, 아베와의 친분 등등 너무나도 확실한 우익 인사임. 그리고 그동안 써왔던 가사들이 여성 혐오적 요소가 너무 짙었음.

안 그래도 방탄소년단의 여혐논란 때문에 비난받았던 적이 있는 방탄소년단의 팬 아미들은 13일부터 16일까지인 오늘 빅히트에 곡을 철회해달라고 요구함. 근데 일본 앨범 예약판매까지 떴거든. 방탄소년단의 기획사 빅히트와 CJ의 합작이 걸린 거 아니냐, 프로듀스48과 연결되어있는 거로 보인다는 추측들도 나와서 쉽지 않을 거라고 전망했음.

그 와중에 국민청원도 들어가고, 시위를 하느니 마니 이야기가 나오는 등 항의 방법 논란도 나옴. 그 와중에 방탄소년단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단하는 등의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하는 논란도 나옴. 거기다가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까 해외 팬들에게도 알려졌는데, 해외 팬들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마찰도 있었음. 한국의 역사문제와 작사가의 문제가 연결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나 봄. 그러더니 오늘 '제작상의 이유로 곡 트랙리스트가 변경된다.'는 공지가 짧게 올라옴. 그걸로 팬덤에서는 사과문까지 받아야 한다, 이만하자 논란.

1.

처음에 나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음. 아미들이 순순히 쉽사리 비판할 것 같지 않았거든. 나중에 예약판매도 떴다는 사실이 알려지니까 예약판매까지 갔으면 더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음. 근데 의외로 여혐전력 논란에 시달렸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 견제하는 팬덤이 없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인지, 본인들이 생각했던 방탄의 이미지가 무너진다는 사실에 절박함을 느낀 것인지, 한국인으로서의 애국심이 걸린 문제라서 그런지 문제의식에 많이들 공감하더라고. 많이 공감했고, 그 와중에 건설적인 방향의 이야기들도 오갔어.

아직 내 타임라인이 방탄소년단과 관련되어서 짜여 있는데, 진짜 팬들은 절박하더라. 울고 토하고 난리가 났어. 솔직히 우익 논란이 오프라인에서는 큰 문제가 안 되잖아. 일본 우익 행사에 참여한 정치인들도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그래.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는 문제인데, 팬들 주 서식지가 온라인이다 보니 크게 다가왔나 봐. 거기다가 문재인 대통령 서신에 대답하지 않았다고 욕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화력이 강했는지 결국 트랙리스트가 변경된대. 온 팬덤이 다 뒤집어져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팬들이 워낙 절박하게 달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2.

이 사건을 보면서 나는 '비웃음이나 냉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어. 탈방한 입장이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보기만 했지만, '너네 그래봤자 예약판매까지 떴는데 해서 뭐할래'라거나 '입 다물고 조용히 묻는 게 차라리 나을걸'하는 비웃음보다는 팬들이 힘을 모아서 하자고 하니까 되더라고.

처음에 메갈리아가 생겨서 소라넷 없애야 한다고 하니까 '소라넷 형님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데, 여자들은 세상 물정을 몰라요' 하는 남자들이 많았잖아. 근데 결과적으로 소라넷 없앰.

인간복제도 가능한 시대이고, 어떤 과학자가 태양을 두 개로 만들겠다고 해도 불가능하다면서 비웃는 사람은 많지 않을걸. 진짜 가능한지 검토하겠지. 불가능하다는 게 없는 시대임. 언제, 누가, 어떻게 할지는 몰라. 근데 완전히 불가능한 사건 자체는 거의 줄어드는 시대.

비웃고 냉소하는 자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트위터가 다른 사람 조롱하고 놀리는 조리돌림에 특화된 SNS거든. 나는 트위터를 몇 년간 하면서 모든 걸 비웃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도 싫어하더라. 자기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임. 자기 자신한테 자기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그렇게 남을 비웃지 않아.

내 블로그에도 '그동안 네 블로그 글 비웃는 재미 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그 사람은 그냥 비웃기만 한 거잖아. 나는 글을 쓴 거고. 비웃는 건 아무나 다 해. 나는 세상 만물을 다 비웃을 수 있음. 그래서 비웃음과 놀림이라는걸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달까. 점점 해가 갈수록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비웃는 사람이 아니라 비웃음당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 우익논란도 마찬가지. 그래서 냉소하지 않고 관망해서 다행이다 싶음.

3.

사과문을 받아야 하냐 말아야 하느냐로 논란이 있는데, 나는 두 가지 다 타당하다고 생각해. 다만 자신들이 거둔 성공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음.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결국은 승리해낸 거잖아. 빅히트라는 회사를 진정성 있게 감화시키지는 못했지만 힘 싸움에서 이긴 거지. 소비자와 기획사라는 힘 싸움에서. 팬들이 원하는 대로 트랙리스트는 변경되었고. 기획사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이와 같은 행동을 할 때는 조심할 거야. 기획사의 속내는 통제하지 못하지만, 기획사의 행동은 통제했으니 성공한 게 아닐까? 충분히 축하할만하다고 생각해. 사과문까지 받아야 한다는 측의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

4.

탈방하고 나서 이 일이 터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아니면 진짜 많이 괴로워했을텐데 이미 탈방한 상태라서 남 이야기 보듯이 관망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트위터에 접속할 때마다 온 타임라인이 전부 이 이야기라서 볼 수 밖에 없었는데, 팬덤 안에서 보는 것과 팬덤 밖에서 보는건 진짜 다르구나 했어. 나는 방탄소년단에 입덕하기 전에 트위터에서 정덕+트페미였거든. 방탄소년단의 여혐을 지적한 트페미들이 아미들에게 사이버 불링 당하는 장면을 매우 많이 봄. 타 팬덤과 부딪힌 사례보다 트페미들과 부딪힌 사례들을 더 많이 알아. 아미들이 여혐남덕인 애니프사들에게 트페미 신상을 털어다 준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방탄팬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던것 같아. 그게 방탄에 입덕하고 나서도 그대로 이어진거고.

근데 이번 사건으로 보니까 팬덤이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는구나,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고 각자 다른 생각과 방향으로 움직이는구나 이해하게 되었음. 탈방하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니 아이러니하지만.

5.

아무튼 기뻐하는 아미들에게 축하합니다. 제 축하를 받기 싫은 아미들은 굳이 내 블로그에 오지 않겠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는건 즐거운 일이죠.

반응형

'덕질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쥬씨 역조공  (6) 2018.10.02
알페스 싸움  (12) 2018.10.01
탈방이 하고 싶어졌다  (35) 2018.09.11
'ㅇㅇ 애미'라는 단어에 관하여  (1) 2018.09.08
경축) 루이보스 티스토리에 댓글 96개 달려  (13) 2018.09.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