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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 허드

나는 자의식 과잉 인간형이다. 그에 걸맞게 큰 이야기를 하는걸 좋아했다. 나는 내가 큰 사람이 될거라고 믿었으니까. 국제정세에 대해서, 종교의 교리에 대해서, 철학에 대해서 등등 이야기하는걸 좋아했다. 그래서 정덕이 되었다. 나라 일을 논하고 싶은데 내가 고위직 공무원은 아니잖아. 그래도 통계치도 보고 해외 사례도 읽어보면서 이야기하는게 즐거웠다. 세상과 나의 삶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가면서 내 삶과 세상을 동시에 배워나갔던 것 같다.

근데 이제는 그런게 귀찮아지더라고. 점점. 정덕일 때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치와 삶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러는거야?' 그러면서. 근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한다. 숙명여고 쌍둥이의 성적이 어떻게 처리가 되든 나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이 일이 대학교 입시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그러면 한국의 인재상도 변할 수 있고 꽤 많은 사회적 영향을 끼치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딱 내 입장만 놓고 생각해보면 내 월급이 변하지는 않는다.

사회의 논의들이 모이고 흐르면서 세상이 바뀌고 그 안의 나도 영향을 받는다는건 알겠는데, 그런 방식으로 놓고 보면 내 인생은 완전히 세상에 종속되어 있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세상이 잘 돌아가야 내 인생도 잘 돌아간다는. 근데 지금보다 여성인권이 후졌던 60, 70년대에도 행복하게 살았던 여성은 있거든. 다만 지금보다 숫자가 훨씬 적을 뿐. 내 삶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내 인생은 결국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외부가 아닌 나 자신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게 되더라.

우울증 환자들이 세상탓, 사회탓을 많이 하는 이유가 그건가봐. 사회에 내 삶이 종속되어 있다고 느끼니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무력감을 느끼고, 사회를 바꿔보려 하지만 사회는 너무 거대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 무력해지고, 세상탓을 하게 되고 그런 반복되는 사이클들.

트위터 계정들을 다 폭파시키기는 했지만 가끔 실트에 뭐가 오르는지 보고, 자주 봤던 계정들도 돌아다니고 그랬는데 방탄소년단이 원폭 피해자들에게 사과한걸로 꽤 논란이 있더라고. 거기에 참전할까 하다 말았다. 피곤하니까. 내가 참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서 참전해서 이야기해주는데 뭐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과거보다 더 나아지긴 했더라고. 일본의 과거사 논란에 유치하게 대응하던 수준이 그래도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수준으로 올라갔잖아. 그러니까 굳이 내가 참전하지 않아도 세상은 좋게 변하니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내 삶에 책임감이 강해지다보니 주변에 무심해지고, 세상이 발전하는걸 경험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 되게 되어있다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보게 된다. 내 정신병이 나아져서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논쟁에 참여하고 세상에 관심을 갖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있어서 사회가 지탱되고 발전하는건 안다. 고맙지만 나는 정기 후원, 투표 등의 작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내 역할을 정하고 싶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자신의 역할을 다 해주어서 세상이 돌아가고 있지요. 내가 이렇게 컴퓨터를 치고 블로그를 할 수 있는 것도 24시간 전기가 공급되기 때문이고, 이 수많은 컴퓨터 부품들을 제대로 설계하고 맞게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나도 내 역할을 다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나의 멘탈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노력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2018/10/24 - [루이생각] - 내가 우울증에 대처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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