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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최근에 아이유가 <나의 아저씨> 출연을 결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요. <나의 아저씨>는 데이트 폭력 미화 혐의가 있는 작품이니까요. 아이유가 데이트 폭력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데에,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지요.

여기까지는 있을 법합니다. 그렇지만 <나의 아저씨> 작품보다는 아이유에게만 비난의 화살이 몰리는 건 비합리적인 일이죠. tvN 드라마국 국장, 드라마 작가, 드라마 PD보다 아이유가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더 큰 영향력을 과연 끼쳤을까? 요즘 내로라하는 배우들도 작품이 없어서 작품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까지 고려하면요. 아이유에게 지나친 비난이 몰리는 이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1.

아이유는 과거에 ‘팬들을 언젠가 한 번 실망하게 하고 싶다’라는 등의 위험한 여자로 이미지 전환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꾸준히 드러내 왔죠. 과거 문근영 씨처럼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국민 여동생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지요. 위험한 여자로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 하는 건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아이유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싶어 하는 금기는 여성주의자들이 깨고 싶어 하는 가부장적인 낡은 질서에서 나온 금기가 아니었죠. 여성주의, 인권주의자들이 큰 노력을 기울여서 만들어낸 데이트 폭력 금지, 아동 성 착취 금지 등의 금기 위에서 줄타기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이 점이 여성주의자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에 지쳐있는 여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다 노래 <스물셋> 뮤직비디오의 소아성애 논란으로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이 폭발했고, 아이유는 그 이후에 꽤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죠.

그 이후에 출연작품이 <나의 아저씨>라니, 아이유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아이유는 반페미니즘적 인물로 단단히 찍혀서 비난을 받고 있지요. 아이유가 이렇게 성공해서는 안 된다, 아이유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로요.

반면에 <나의 아저씨>에 출연하는 다른 출연진은 비판받지 않고 있고요. 이선균 씨가 아이유 씨가 비판받는 10%만큼이라도 비판을 받고 있는지? tvN에서 하는 드라마라는 걸 알긴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아이유에게 과도한 비판이 몰리는 것 역시 여성 혐오의 혐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아이유가 <나의 아저씨>에 출연함으로써 <나의 아저씨>의 인기가 더 높아졌다는 걸 들어 아이유를 비판해야 한다고 하는데, 아이유의 출연 결정은 그 영향력을 더 크게 만든 것 뿐이에요. 아이유가 출연하지 않았다고 정말 그 드라마가 엎어졌을까요? 아이유만 생각을 바꾸면 데이트 폭력을 미화하는 작품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여성 혐오적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과 사회적 분위기 지적보다는 아이유 한 명을 공격하는 분위기에 과연 여성 혐오가 없을 수 있을까요. 아이유가 은퇴하면 여성 혐오적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않나?

2.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유는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고,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더 비판받아야 한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게 바로 여성 혐오에요. 여성에게만 많은 기대를 하는 것도 여성 혐오의 일종이에요. 시어머니가 아들에게는 하지도 못할 요구사항을 며느리에게 ‘같은 여자니까 너는 내 마음 이해하지’라면서 당연한듯이 요구하는 것도 여성 혐오인 것처럼요. 여성에 기준선을 높이는 거죠.

아이유가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죠. 그 영향도 저는 꽤 과장되어있다고 생각해요. 아이유를 공격하기 위해서요. 다른 데이트 폭력 미화 작품의 영향력보다 <나의 아저씨>의 영향력을 더 과장하는 거죠.

인기 많은 아이유가 수동적인 여성상을 사회에 유통하니, 아이유의 영향력이 축소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그렇죠. 아이유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큰 것이 아니라 다른 여자 연예인들의 영향력이 약한 게 아닐까요? 아이유가 존재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여성 솔로 아이돌의 부재가 문제인 거죠. 과거에 엄정화-이정현-김현정이 동시에 존재했던 시절이나, 보아-장나라-이효리처럼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존재한다면 다양한 역할 모델을 보여줄 수 있었겠죠. 아이유의 파이가 큰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 연예인들의 파이가 적어서 상대적으로 아이유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 보이는 거겠죠.

이런 말을 하면 ‘나는 다른 여자가수 응원도 하고, 아이유 끌어내리기도 할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죠. 그런데 아이유를 끌어내리면 아이유가 먹었던 파이를 다른 여자 가수가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요? 여성 가수 시장만 좁아지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요?

엄정화-이효리-아이유로 이어지는 여성만능엔터네이너 계보를 잘라먹으면 누가 이득을 보죠? 이효리가 서른 살이 되어갈 즈음 얼마나 불안해하고 외로워했는데요. 그나마 엄정화를 보면서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데. 그 계보가 잘리면, 그다음 세대의 여자 솔로 아티스트는요? 지금 미래 고민 많은 여자 아이돌들이 아이유의 존재에 얼마나 환호하는데, 아이유가 인기가 줄어드는 걸 과연 여돌들이 반길까요?

3.

여성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으로 치부되고, 여성의 실패는 여성 전체의 실패로 과장되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늘 최초로 금녀의 벽을 깬 여성은 ‘내가 잘못하면 다시는 이 분야에서 여성이 못 들어올지도 모른다’라는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리고요. 이번 탄핵 사건도 그러지 않았나요? 여성 대통령 박근혜가 실패해서, 추미애가 이끄는 제1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이정미 헌재소장 대행이 판결문을 읽어내리는 여성 정치사에서 중요한 장면이었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근혜의 실패만 끄집어내서 ‘여성 리더십의 실패’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 했어요.

아이유를 둘러싼 사태에서도 이 점이 보인단 말이죠. 아이유의 성공은 그저 개인적인 영광으로 치부하고, 아이유의 잘못은 사회적 영향력의 문제로 확대해요. 아이유가 수동적인 여성상을 사회에 유통하는 게 문제라면, 아이유의 성공으로 힘을 얻는 다른 여성들의 모습에도 주목해야죠.

대한민국 탑 싱어송라이터로서 아이유가 갖는 상징성은요? 기획사가 잡아준 컨셉만을 소화하는 아이돌이 아니라 직접 작사·작곡을 하면서 엄청난 저작권 수익을 올리고 있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성과 실력을 인정받는 여자 가수의 존재가 과연 무가치하다고 할 수 있나요?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면서 우뚝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아이유에 환호하는 여자 아이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한 분야의 탑이 여성이라는 것, 그게 다른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데요. 아이유가 다른 여성들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은 무시되고 있어요. 오로지 부정적인 영향력만 과장되죠.

4.

아이유를 둘러싼 논란은 성공한 여성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을 때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기도 해요.

저는 여성 혐오적 남성이 있던 자리에 여성 혐오적 여성이 들어가는 것도 진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성 혐오적 남성이 있던 자리에, 비리도 없고 깨끗하고 인성도 바른 여성이 들어가야만 진보가 아니라요.

성공한 여성 CEO 기사에 이 CEO에 너무 환호하지 마라, 이 사람도 비리 저질렀고, 무슨 잘못을 했고, 그러니까 칭찬하면 안 되고 어쩌고. 남성 CEO는 원래 그러니까 지적을 안 하는데, 여성이니까 지적하는 거랍니다. 완전하지 못하다고요. 완벽한 여성의 성공만이 성공이라니욬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말을 하면 생물학적 성별이 뭐가 중요하냐, 성 평등에 도움이 되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차별하는 사람이 생물학적인 성별을 놓고 차별하는데, 어떻게 생물학적 성별을 무시할 수가 있죠?

참여정부 당시에 강금실이 여성 최초로 법무부 장관 자리에 올랐죠. 검찰 간부들은 ‘딸뻘이네, 어떻게 여자가, 말 안 들을 거다’ 이런 말을 대놓고 해가면서 말 안 듣겠다고 단합을 했고요. 이런 모습을 남자 장관 앞에서도 보일까요? 우병우가 머리 좋아서 사법시험을 일찍 붙었다고 나이 많은 후배들에게 빈정거리면서 무례하게 굴어도 찍소리 못했던 게 검찰들이에요. 근데 전설 변호사였던 강금실 앞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래요.

레임덕이 온 정권 말기도 아니고, 권력 짱짱한 이제 갓 출범한 정부에서 처음으로 임명한 장관 앞에서 이렇게 항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일 거라는걸 남자 장관이 어떻게 알죠? 앞에서 ‘성차별 나쁘죠’ 한마디 하고 말겠죠. 여성이 그 자리에 있어야 숨겨왔던 차별이 드러나고, 그제야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운동이 시작되는 건데요.

경향성도 있어요. 유리천장을 뚫고 그 분야 최초로 고위간부에 오르거나 최고직에 오르는 여성들은 대부분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어요. 출세욕 강한 명예 남성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 타입들이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노력하다가 어쩌다 한 명 뚫고 최고직에 올라가요.

영국 최초의 여성 정부 수반인 마거릿 대처도 페미니즘적 인물이 아니었고, 여성 CEO가 드물었던 당시에 다국적 기업 HP CEO 자리에 올라서 여성 CEO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칼리 피오리나가 그 예죠. 대부분 국가에서 최초로 정부 수반 자리에 오른 여성들을 봐도 페미니즘과 거리가 있는 보수 정권 출신이 대부분이에요. 대한민국의 박근혜 역시 그 경향성 안에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여성중 의전서열이 가장 높은 추미애 씨도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죠.

이를 두고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인권 신장해놓으면,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명예 남성들이 열매 따 먹는다 분통을 터트리는 때도 있지만, 최초의 열매를 누가 따먹는지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죠.

어쨌든 최고위직에 올라간 여성들은 여자 홀로 남자들 사이에서 버티는 건 힘들다는 걸 알고 다른 여성을 끌어주거나, 그 최고위직 여성을 보고 용기와 희망을 받은 수많은 여성이 더 많이 도전하면서 다양성을 확보해나가요. 숫자가 많아져야 차별에 목소리도 나오는 거지, 혼자서는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죠. 그 존재 자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여성의 성공은 다른 여성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됩니다. 오바마와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 경선을 펼쳤을 때, 흑인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오바마를 지지해도 비난받지 않았지만,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힐러리를 지지하면 생물학적 어쩌고 별 이유로 비웃음을 당하고 공격당했죠. 오바마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기 때문에, 대다수 흑인의 가난한 삶에 공감하지 못하고 차라리 빈민가에서 자란 빌 클린턴이 가난한 흑인들의 현실을 더 잘 알 거라는 분석이 있었죠. 그 말을 흑인들이 귓등으로라도 들었나요.

오바마를 당선시켰고, 미국 흑인들에게 있어서 오바마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는 다들 알지 않나요. 늘 소외당하는 흑인이기에 성공할 수 없다는 열패감이 있었는데, TV를 켜면 흑인 대통령이 나와요. 나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이, 내 약점이라고 믿었던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이 성공한 모습이라니. 흑인들의 자의식과 세계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을까.

여성의 성공도 마찬가지라고 보거든요. 실패도 마찬가지고요.

박근혜는 철저하게 실패했죠. 근데 이것도 진보예요. 언제는 여성에게 실패할 기회나 주어졌나요. 과거에 여성이 뭘 시도해 볼 수는 있었어요? 수많은 남성 정부 수반이 실패해오다가, 여성 정부 수반 한 명이 실패했죠.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 정치인들은 박근혜의 당선을 두고, 선거전략과 당선에 득이 되었던 요인과 실이 되었던 요인을 수없이 분석했을 거에요. 정책별 지지율도 수없이 돌려봤을 것이고, 어떻게 하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부감이 드는걸 없앨 수 있는지 수없이 계산해봤을 거에요. 막연히 머릿속으로만 이럴 거다 저럴 거다가 아니라, 실제 사례가 생긴 거잖아요. 남자가 실패한 것보다야 여자가 실패한 게 다른 여자에게 도움이 되는 거죠. 여성 혐오가 심한 사회일수록 사람을 성별로 평가하기 때문에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기 쉬우므로, 데이터로 활용하기 좋죠.

여성이 실패하면 다른 여성에게도 부담이 된다고 하는데, 여성이 한 번 고위직에 올랐던 조직에서는 그 여성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다시 올라갈 확률이 높아요. 고위직에 한 번 올라가면 조직 분위기가 아무래도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성의 성공은 다른 여성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고, 여성의 실패는 반면교사가 되고 데이터가 됩니다.

5.

여성들은 더 많은 성공을 하고 더 많은 실패를 하고, 더 많은 업적을 세우고 더 많은 잘못을 저질러야 해요. 실패하지 말라고 하는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죠. 무언가를 시도하다보면 실패와 잘못은 생기기 마련인데.

페미니즘이 원하는 것도 여성이 실패할 자유가 아니었나요. 이제까지 여성들에게는 완벽할 의무만 있었죠. 실패할 자유 없이요. 늘 완벽한 외모, 실패 없는 일 처리, 고분고분한 말투, 모든 것을 예견해서 성폭력을 피할 수 있는 현명함, 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처세술 등등 수많은 조건을 요구받았죠. 그리고 그건 당연하기에 다른 보상을 받을 수도 없었어요.

온라인에서 아이유를 지독하게 비난하는 여성들이 불편한 점도 이 때문이기도 해요. 여성 혐오적 시각이 있기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실패도 하지 않고 잘못도 하지 않겠죠.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다른 여성들의 잘못과 실패를 지적할 수 있고요.

과연 그들이 아이유가 여자 아이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처럼, 다른 여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을까? 다른 여성이 나보다 잘나가는 것에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한 적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다른 여자들이 내 앞길 가로막는다, 내 여권 하락시킨다. 다른 여자들 탓만 하고 있지는 않을는지.

저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의 성공에서 용기를 얻고, 다른 여성의 실패에서 반면교사의 경험을 얻으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을 꿈꿔요. 다른 여성의 실패를 정죄하지 말고 자신의 성공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아이유를 둘러싼 과도한 비난 역시 페미니즘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2018/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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