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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

트위터에서는 ‘탈코르셋’ 논란이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주로 워마드계 페미니스트들과 다른 경향의 페미니스트들이 부딪힌다. 워마드는 ‘외모를 꾸미는 것은 사회의 강요이자 억압이므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외모를 꾸미는 것도 꾸미지 않는 것도 여자의 자유다’라고 주장한다.

워마드는 여자들이 외모로 평가받는 외모지상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여자들이 화장하지 않고 투블럭컷 등의 머리 모양을 갖추는 등 사회가 원하는 여성의 외모와 다른 외모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다른 여자들에게 강요하는 과정에서 ‘여자들이 긴 머리카락 넘기는 건 푼수 같다’, ‘외모 코르셋을 안 벗는 여성은 주체적 애완동물이다’라는 등 여성 혐오적 발언들이 나오면서 늘 논란이 일어나고는 한다.

나는 여성의 외모에 관련된 논의 역시 페미니즘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우선순위 높은 의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굳이 외모에 관련된 논란으로 이렇게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있다. 그렇지만 트위터에서 논의되는 자유를 중심으로 입장 정리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기에 정리해보려 한다.

모든 자유는 동등하지 않다. 자유에도 우선순위가 존재한다. 연쇄살인을 할 자유를 인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자유를 동등하게 보장하면 사회 정책을 어떻게 세울 수가 있겠는가? 어떤 자유를 받아들이기 전에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부작용이 나타나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제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락사의 예를 들어보자. 안락사는 ‘사람은 죽고 싶을 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라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는 안락사의 도입을 미루거나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의료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나라에서 안락사가 도입된다면,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가정에서는 병원비를 아끼기 위해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해야만 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죽고 싶을 때 편안하게 죽을 권리’가 아니라 ‘돈을 아끼기 위해 죽어줘야 할 의무’가 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안락사의 도입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보장 시스템을 먼저 갖춰야 한다.

다른 문제도 있다. 아직도 여자가 결혼할 때 지참금을 충분히 가져오지 않았다면서 여자를 산채로 태우는 나라도 존재한다. 그런 나라에서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과연 여자가 아파서 병원에서 비싼 치료를 받아야 할 때 여자를 치료하려고 할까?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에서 여성들의 장기기증 비율이 높다. 주로 가족에게 장기기증을 하는데, 여성이 원해서 장기기증을 한 것이라고 하지만, 여성의 신체 건강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유와 권리를 도입했을 때 부작용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수자다.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유와 권리보장을 미뤄야 할 때도 있다.

이런저런 부작용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 결과를 낳을까 봐 안락사 도입을 미뤄서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 나는 진짜 순수하게 죽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피해 볼까 봐 안락사 도입이 미뤄진다니. 그렇지만 그런 사람으로서는 사회적 기반이 빨리 갖춰져서 안락사가 도입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 않나.

안락사가 도입된다고 해도 사회 정책을 세울 때는 ‘사람들은 최대한 살고 싶어 할 것이다’를 전제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 치료받고 싶어 할 것을 전제로 의료보험 비용을 책정하고 정책을 만들고, 의료기기와 의학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안락사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안락사 약품 개발은 부수적으로 해야지.

만약 그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은 안락사하고 싶을 것이다’를 전제로 정책을 세우면, 의료체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의학기술을 발전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입한다고 해도, '안락사하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가 디폴트이고 '안락사할 권리'는 옵션으로 따라오는 부수적인 권리다.

담배를 피울 흡연권과 담배 피우는걸 싫어할 혐연권 논쟁도 마찬가지다. 국민 보건과 건강을 위해, 흡연으로 건강이 나빠져서 건보료 재정에 악영향을 주는 사회적 영향을 위해 혐연권을 우선시한다. 흡연 장소를 정하고, 담배 가격을 올리고, 담배에 사진을 싣는 행위들이 그것이다. 흡연권과 혐연권 모두를 인정해주지만, 우선순위가 분명히 있다.

트위터에서 청소년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10대 흡연권의 경우, 결과가 우려되어서 사회적으로 도입되기 힘든 경우다. 10대가 흡연할 권리를 얻는다고 하자. 과연 그 권리장보장으로 나타난 결과가 모든 10대에게 평등할 거라는 보장이 있나? 부모 대부분은 자식의 흡연을 반대할 것이다. 통제하기 힘든 한부모 가정,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가정의 10대들의 흡연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폰 등의 온라인 접속 통제도 다른데 말이지.

선진국에서 청소년에게 담배 광고를 규제하자 담배회사들은 개도국의 청소년을 표적으로 삼았다. 담배, 음주 등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10대 때부터 허용하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건강에서부터 빈부격차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거든. 산업화시대 때 부르주아와 노동자들의 인종이 달라보였대잖아. 피부색은 물론이고 영양실조로 체격이 완전히 달라서. 지금 10대의 흡연과 음주를 금지하는 정책은 10대까지의 건강상태를 평등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10대의 흡연권을 주장하고 싶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10대의 성적 자기 결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원하는 사람과 섹스할 권리’와 ‘원하지 않는 섹스를 거부할 권리’ 중에서 후자에 더 무게를 싣는다. 섹스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섹스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은 죄책감을 심어주는 등의 방식으로 원하지 않는데도 섹스에 동의하도록 할 방법들이 많기 때문이다. 원하는 사람과 섹스하지 못했다고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원하지 않는 섹스를 거부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기니까. 미국에서 섹스할 수 있는 나이를 17세 정도로 정하고, 그 밑은 의제 강간으로 처리하는 것은 후자를 매우 강력하게 지지하는 예이다. 섹스할 권리보다 성적 착취를 피할 권리를 더 먼저 보장하겠다는 뜻이지.

이렇게 자유에는 우선순위가 분명히 존재한다. 서로 상충하는 자유도 있다. 각각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필요한 예도 있다. 자유를 보장했을 때 나타날 결과도 예측해서 고려할 수밖에 없다.

탈코르셋 논란은 ‘외모를 꾸밀 자유’와 ‘외모를 꾸미지 않을 자유’의 대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외모를 꾸미지 않을 자유’를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압력이 여성들에게 작용하는 것은, 여성들의 시간과 에너지, 금전 등의 자원을 자신의 외모에 소모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이다.

‘대다수가 외모를 꾸미지 않지만, 꾸미고 싶은 사람은 꾸미는 사회’와 ‘대다수가 외모를 꾸미지만, 꾸미기 싫은 사람은 꾸미지 않는 사회’라면 전자가 우선할 수밖에 없다. 흡연권과 혐연권의 문제처럼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고, 디폴트를 두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화장하는 것이 자유가 되려면, 화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아직 그런 분위기가 아니지. 외모를 꾸미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진정으로 외모를 꾸미는 것이 자유가 되지 않을까.

무조건 꾸미고 싶은 사람과, 무조건 꾸미지 않고 싶은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사람은 대부분 사회 분위기에 따라간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가는 대다수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은 꾸미지 않을 자유가 더 크게 보장되는 사회일 것이다.

워마드의 탈코르셋 운동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여자가 꾸미지 않는 사회가 꾸며야 하는 사회보다 낫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 '꾸미지 않을 자유'가 기본이고 '꾸밀 자유'는 부수적인 옵션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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