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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을 쓰려 했지만 오늘 갑자기 여초 커뮤니티에 소속되어서 있었던 일들에 분노가 밀려와서 이 글 부터 쓰기로.

일주일 이주 전쯤에 여초 커뮤니티를 다 탈퇴했습니다. 방탄 공식 카페만 남았어. 이게 다섯번째인가 그럴걸. 이제는 탈퇴하는데 갈등도 생기지 않더라고. 완전히 정이 떨어졌어. 이제까지는 탈퇴 이유에 탈퇴해야한다는 억지 의무감도 있었는데, 지금은 있어봤자 나에게 해가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또래보다 꽤 일찍 컴퓨터를 접했고, 그래서 커뮤도 일찍 시작한 편이었다. 그래서 커뮤의 영향도 받았는데, 나에게 좋은 영향보다 악영향이 더 컸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하지 못한 속내를 털어놓는 곳이다. 꽤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속내라는게 대부분 부정적 내용이잖아. 긍정적인 내용이면 오프라인에서 말하고 온라인까지 들고 오지 않지. 그런 부정적인 내용을 접하다보니 나까지 성격이 부정적으로 변하더라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리고 싶었던 것 같다. 혼자 내가 원하는 걸 생각해서 밀고나갈 용기가 별로 없었다. 실패하는걸 두려워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있으면서 안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동안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를 다 잊었다. 커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커뮤 사람들이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방향이라 믿었다.

커뮤니티에 회의감을 느꼈을 때도 많았다. 한미FTA에 쌍코카페에서 자유게시판에서 오로지 한미FTA이야기만 하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다. 중요한 시국이나 한미 FTA만 이야기 해야한다고. 당시 이명박 정권이었는데, 이명박 퇴진 시위와 연결이 되어있었다. 근데 문제는 카페 회원들 대부분이 왜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하는지 정확히 어떤 불이익이 있었는지 몰랐다. '어맹뿌가 나라를 팔려고 한미 FTA를 추진하는거라오' 이 말이 전부였다. 한미 FTA에 대한 건설적인 이야기보다는,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저격하고 공격하는 글이 훨씬 더 많았다.

결국 내가 기사들을 뒤져가면서 한미 FTA를 하면 얻는 이익과 손해를 정리해서 게시글로 올렸고 다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 대부분이 '이제야 왜 FTA를 추진하는지 알겠고, 반대하는지도 알겠다'는 댓글이 수십개가 달렸다. 어떤 사람은 내가 FTA 찬성 측의 입장도 적었다면서 이명박의 프락치가 아니냐는 비난을 했다. 나에게 프락치라고 비난한 사람은 내가 글을 올리기 이전에는 이명박 정부가 왜 한미FTA를 추진하는지 한마디도 설명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FTA에 대한 정보 보다는 이명박 정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 인민재판하는게 더 중요했던거다.

한미 FTA는 체결되었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스크린쿼터폐지 논란이 그래서 발생했고. 그런데 쌍코에서는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오히려 쫓겨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미FTA 체결 이후 아이허브, 전자제품 직구 방법 노하우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FTA로 직구 이득을 본거라는 사실을 회원들이 알기는 했나. 그냥 FTA 반대를 외쳐야 한다는 분위기에 휩쓸린게 아니었나. 한미FTA가 뭔지 알기는 했었던건가. 정치에 관심있는 개념녀라는 딱지를 정당화하려고 다른 회원들을 공격하면서 반대해야한다고 강요하기만 했던게 아니었나. 그 카페에서 내 게시글에 제대로 반박한 사람이 없었다. 읽을만한 정보도 없었고. 이런 일들이 많았다.

여초 커뮤에서는 정치에 관심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정치에 관심있다고 하지만, 정치가 진짜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국제관계, 사법질서, 입법과정, 정책, 정책에서 고려해야할 사항 등등이 뭔지 아무것도 모른다. 고등학교 정치 시간에 배우는 수준의 내용조차도. 오로지 그 사람들은 훌륭한 남자 후보 한 명을 찍어서 밀어주면 그 남자후보가 다 해 줄거라고 믿는다. 지금 문재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 역시 그와 관련되어 있다.

평창 올림픽 때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문제로 문재인 정권이 비난 받자 소울드레서카페에는 '사실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으로 전쟁을 몇 달 미룬거고, 전쟁이나면 중국이 북한을 먹을 수 있게 비밀 협약이 체결되어 있다'는 어이없는 음모론 글이 정치 말머리를 달고 올라왔다. 김어준 음모론이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질떨어지는 음모론은 또 뭘까. 그 게시글을 다른 카페에까지 퍼가서 문재인 정권이 중국이 북한을 먹지 못하도록 한거라는 유치한 글을 가지고 설득하려고 하기도 했다.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수준이 점점 떨어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이전부터 수준은 떨어져왔지만. 여초 커뮤는 다수결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중우정치라고 할까.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결권을 가진다. 누군가가 수준 높은 글을 쓴다고 해도 댓글로 평가받는다. 카페의 지향점과 맞으면 유치하고 어이가 없어도 칭찬을 받고, 카페의 대체적인 의견과 다르면 수백개의 비난 댓글을 받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에 의문을 가지는 글은 아무리 의미 있는 글이라 한들 쫓겨나며, 다른 후보를 비난 하는 글은 아무리 수준이 낮은 글이라고 해도 칭찬을 받는다.

선거제도 논문과 기사들을 읽어가면서 열심히 글을 썼는데, 여촌야도 현상도 모르면서 마음에 안 든다고 화내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어떨거 같나. 그렇지만 여초 커뮤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사람이므로 동등한 의견 취급을 해줘야 한다. 대다수 의견과 반대되는 사람이 우선 나갈거고, 혼자 자신의 생각을 어디서든 펼칠 수 있는 사람도 질려서 나간다. 남는 사람은 비슷한 의견만 제시할 수 있고, 거기에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쓰는 글들의 수준이 어떨까. 위에서 예를 든 중국이 북한을 먹을 까봐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추진해야 한다는 글도 아마 그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아마 소울드레서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글이니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겠지. 다른 사람이 보면 한심한 글이었는데도. 그러니까 오프라인에서 정치토론하면 다 지잖아. 카페에서 자기 좋은 글만 보다보니 오프라인 인식과 괴리가 생기고. 거기에 또 분노하고. 계속 카페에만 있으려고 하고.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은 다 나가고, 다른 사람 검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만 남아서 서로를 검열해대는 판국이다. 트찔이라면서 트위터 사람들을 욕하지만, 트위터 사람들은 똑같은 1명이 아니라, 자기 계정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각각 자신의 개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타임라인을 만들면서 자기 생각을 전시한다. 모두가 같은 여론이어야 하다는 여초 커뮤와는 다르다. 다양성 면에서 트위터가 우월할 수 밖에 없고, 적어도 자기 전문직 내걸고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많기에 소위 말하는 좆문가(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척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기 힘든 환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트위터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화장품, 옷 정보를 알아야겠다고 여초 커뮤에 있는 것을 정당화했던 시절도 있었다. 근데 패션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카페에 글을 올리면서 사도 되겠냐고 묻겠니?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이고 좋은 옷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사겠지. 결국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주고 받는건데. 차라리 옷가게 돌아다니면서 발품 파는게 더 낫더라. 화장도 전문가한테 돈 내고 메이크업 클래스 들으면서 추천받는게 훨씬 낫더라.

많은 정보도 필요하지 않았다. 실천하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여행가고, 놀러가고, 공부하고 등등의 정보보다는 실천하는 시간이 더 긴데 그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가 않더라고. 네이버에만 쳐도 좋은 정보가 주르륵 나온다.

여초 카페 사람들은 상업성이 없이 오로지 열정으로만 만들어진 순수한 정보를 원하는데, 글쎄. 상업성 없이 그렇게 검열 좋아하고 까다로운 사람에게 왜 떠먹여주냐. 나도 해봤는데 질리더라고. 나에게 투자하는게 낫지. 보는 사람이 걸러야 한다. 상업성 없는 순수한 정보만 원하면서 대책없이 기다리는 것보단. 이 정보로 누군가 이득을 얻는게 아닐까 불안해하기 보다는.

국정원이 인터넷 커뮤에서 선동하는 이유는 영향력도 있지만, 선동이 잘 되는 사람들이 몰려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정립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선동이 먹혔을까.

최후의 보루는 배경화면 사진과 아이돌 사진이었다. 근데 핀터레스트 가입하니까 예쁜 사진 다 나오더라. 중요한 정보는 책에 다 있었고. 신문만 읽어도 전날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분야별로 중요도에 맞게 편집까지 해서 배달해주는데.

그래서 다시는 여초 커뮤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거기서 얻을 정보가 없어서요. 책 읽고 내가 블로그에 정보를 생산하고 댓글로 교류하는게 맞지 않나 싶어요. 오늘도 '이런 글은 일기장에 쓰라'는 댓글이 달렸던데, 이 블로그가 제 일기장이랍니다. 게시판이나 커뮤에서 마음에 안 드는 글이 있을 때 '이런 글은 일기장에 써'이런 댓글 달던게 습관이 되어서 제 블로그에까지 그런 댓글을 다는건지.

두뇌가 아직은 말랑할 때 끊어야 커뮤 물을 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 생활화 되어있기 때문에 완전히 끊는건 현대 사회에서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트위터 접속을 안 하려고 생각 중이기도 합니다. 블로그에 글을 털어 놓으면 기분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확실히 긴 글이 주는 이점이 있더군요. 앞으로 블로그 포스팅은 더 자주할 예정입니다.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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