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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https://www.netflix.com/kr/title/80095900

<악플러는 꺼져주세요 시즌2>가 나왔다고 해서 넷플릭스에서 다시 결제했고, 시즌2도 3일 동안 봤다. 역시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더라고.

드라마의 주인공 미란다 싱어는 자기 객관화가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다. 우스꽝스러운 화장을 하고, 자신은 남들을 귀찮아하지만, 남들이 늘 자신에게 다가오고 싶어한다는 투의 표정과 몸짓은 기본이다. 심각한 음치에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호의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유튜브 스타를 꿈꾼다.

미란다가 이렇게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가족들의 보호다. 미란다가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고 믿을 수 있도록 미란다의 가족들은 미란다에게 어떤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집 밖에서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집 밖에 나가면 때로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피해야 할 사람이 되기도 하거든. 미란다는 자신은 유명인이라는 자신의 설정과 세계에 심취해서 사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미란다는 유튜브 스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어설프지만 계속 뭔가를 한다. 미란다가 원하는 방향처럼 아름다운 스타로 소비되지는 않지만, 코미디언 캐릭터로 점차 명성을 얻어간다.

사람들에게 감히 추천할 자신은 없다. '민폐 캐릭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란다가 그렇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란다의 동생 에밀리에 감정이입을 할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다. 어떤 사람들은 캐릭터의 성격들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의 캐릭터 설정들이 매우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들을 엄마에게 떠맡기는 구조, 삼촌이라는 사람은 뭐 하나 하지 못하는 식충이지만 미란다를 응원해주고, 미란다는 그 특유의 성질로 가족들을 휘어잡고, 동생들은 미란다에게 휘둘리는 가족들이 짜증 나서 자신을 지원해줄 아버지에게 가고 싶어 하고 제 역할을 못 하는 엄마를 오히려 돌보려고 하고.

정상 가족도 아니고 막장 캐릭터들이라고 하면 막장 캐릭터들인데 장녀와 차녀 설정이라든지 가족 관계라든지 그 관계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거든. 집은 과장될 정도로 늘 엉망인 상태인데, 삼촌은 자기가 정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집이 어지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뭔가를 찾을 때 정리하면서 찾지 않고 늘 엉망으로 만들면서 찾는다. 근데 그걸 의식 못함. 이런 디테일들이 살아있어서 좋았다.

나는 요즘 이런 캐릭터들이 좋거든. 미란다 같은 캐릭터. 남들의 시선에 지나치게 예민하지 않은 캐릭터. 미란다는 인격이 훌륭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 객관화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지만. 어쨌든 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건 계속하고 실제 피드백도 온다.

이 드라마는 사실 실제 이야기다. 미란다 역할을 맡은 배우는 유튜브에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비호감 캐릭터로 짧은 비디오를 올렸고, 사람들은 그 캐릭터가 실제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비난하기도 하고 호감을 보이기도 하면서 유명해졌다. 그 캐릭터에게 스토리를 부여해서 만든 드라마가 바로 <악플러는 꺼져주세요>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이기도 한다는 것.

요즘 느끼는 건 사람은 계속 뭔가 하면 어쨌든 뭔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 나는 영원히 주제를 모르고 살 것이다 이 글을 지인 블로그에서 읽었는데 해방감이 들었거든. 나는 이런데 내가 해도 될까? 겁먹으면서 살 필요가 없지.

그런 사고방식은 자원이 부족했던 과거에나 통하던 사고방식임. 자원이 없으니까 소수에게 몰아줘야 하므로 잘난 사람에게 자원을 몰아주기 위해서, 못난 사람은 주제 파악하고 자원을 쓰지 말라고 했던 거. 한국 경제개발 시기에 돈이 없으니까 대기업, 제조업 우선 정책으로 제조기업들에 자원 몰아줬잖아. 가난했던 시기 한국에서는 장남에게 몰빵해서 장남만 대학 가게 하고 그런 식으로. 근데 지금은 자원이 넘쳐나는 시기임. 2010년에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총 100만 명인데, 비만으로 죽은 사람이 300만 명이었다는 사실 알아? 이제는 뭐 음식도 넘치고 누구나 유튜브로 자기 이야기 할 수 있는 시대지.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 시도해도 이제는 잘난 사람에게 갈 자원이 줄어들지 않으니까 마음껏 해도 되고 죄책감 느낄 필요가 없다고.

기회가 경제개발 때보다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줄어든 기회는 계층 상승의 기회다. 자아실현의 기회는 오히려 늘어남. 직업도 다양해지고 해볼 수 있는 것도 늘어났거든. 2010년대 중간 정도의 서민이 1980년대 상류층보다 평균수명 길고 더 나은 생활을 누리고 있을걸. 어떤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들은 중세시대 하인 30명을 데리고 사는 귀족과 같다더라. 세탁기, 청소기, 하수도와 상수도, 편리한 난방시설 등등 그런 시스템이 갖춰진 거. 그래서 그렇게 생각해보면 굳이 계층상승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내가 즐거운 거 하면서 살면 되지 않나. 복지제도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굶어 죽지는 않을 거 같은데.

마더 테레사도 비난받고 힐러리 클린턴도 과거에 말실수했던 흑역사가 있는데 내가 뭐라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하나 싶은 생각도 한다. 다들 흑역사가 있는데 그 흑역사를 두려워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안 되니까.

영어를 배울 때면 바로 능숙한 영어 화자가 아니라 서투른 영어 화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능숙한 분야에서도 나는 서투른 시절을 거쳐왔고 누구나 서툴고 실수하는 시절은 거친다. 그걸 겁내서 아무것도 못 한다면 내 인생에 남는 건 없잖아.

자신이 확신이 있으면 밀어 붙여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래서 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겁먹지 말고. 요즘은 인권의식도 발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다 알아서 막히는 세상이다. 알아서 잡아가고. 남에게 물 뿌리는 것도 폭력이라고 판결 내려주는 세상에 살면서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 아닐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있겠나.

드라마에 나오는 미란다 싱어처럼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가 있으면 잡는 게 맞고,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하는 게 맞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을 조롱하고 비평하는 것보다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란다 싱어같은 타입이 좋아.

(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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