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나탈리 포트먼


0.

혼자서 막연히 생각하던 사실을 글로 차분하게 설명해낸 책을 볼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채식의 배신>의 저자 리어 키스는 20년간 비건 채식을 해왔던 급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다. 그가 채식은 잘못된 신념이라는 점을 깨닫고 쓴 개종서인 이 책은 정말 탁월하다. 채식의 문제를 윤리적, 정치적, 영양학적으로 수많은 근거와 경험을 토대로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1.

나는 고등학생 때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고 동물권을 알게 되어 육식과 동물 실험을 비판적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그 시기는 한창 에코 페미니즘에 심취했을 때였다. 신자유주의와 지나치게 발달한 과학기술이 가부장제를 강화한다는 주장이었다. 자연적 이과 친환경적으로 신석기 시대처럼 돌아가야만 성평등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에코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채식을 선망한다.

나 역시 대학생이 된 이후로 2년간 채식을 했다. 그 시기가 내 정신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던 시기와 일치한다. 단백질 공급이 부족해지면 뇌에 악영향을 주어 정신건강이 악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멍하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20년간 비건 식단을 유지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렸고 퇴행성 질환에 시달렸다. 모든 사람이 채식한다고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다만 유전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다.

그 이후로 피임약 없는 페미니즘이 가능한가? 과학 기술을 통해서 출산 시에 사망하는 산모의 숫자가 급감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성의 가사에서 해방되었고 교육의 기회가 늘어난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지식기반 사회가 되어서 전쟁이 사라졌는데 전쟁 없는 평화상태가 아니라면 과연 페미니즘이 가능한가? 등등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과학과 자유주의는 여성해방에 이바지했다는 결론을 내렸고, 에코 페미니즘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로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채식과 동물실험 금지 주장에도 점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 의문들을 말끔히 해소해준다.

2.

내 삶이 전쟁터이자 전투의 함성이기를 원하고, 가부장제, 제국주의, 산업화, 그리고 모든 형태의 권력과 가학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화살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매료되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저자의 열정이다. 나 역시 한때 그런 삶을 꿈꿨었지만 그렇지 못했거든. 세상을 개혁시키기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내가 뭘 해야 할지 치열하고 치밀하게 고민하고 배우는 삶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농부이기도 했다. 다른 지역의 식자재를 운송하고 운송하기 위해 보존하는 등의 작업을 거치면서 환경이 많이 파괴되는 바람에 스스로 직접 농사를 지어 자신이 먹을 식량을 조달하려고 했고 그 상황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동물 권리 옹호자들은 인간의 동물성을 끊임없이 불편해할 뿐 아니라 동물의 동물성마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건 아마도 자연의 '본질적인 사악함' 즉 포식 관계에서 인간을 완전히 빼내고 동물도 함께 빼내는 것이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바로 자연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채식하는 사람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사자와 사슴 사이에 장벽을 건설해서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지 않고 풀을 뜯어 먹도록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동조한다. 그러나 사자는 풀을 소화할 수 없다. 사자의 신체가 육식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트위터에서 고양이를 기르면서 고양이에게 채식 사료를 줘야 한다고 말하는 주장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신체는 정신으로 개조할 수가 없다.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을 가엾게 여긴다고 해서 육식동물의 신체가 바뀔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호흡할 때 이산화탄소를 내뿜어서 지구 온난화에 일조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호흡할 때 산소를 내뿜을 수 없듯이. 흙 속에 살아 숨 쉬는 미생물부터 사자와 같은 최상의 포식 동물까지 서로 잡아먹고 먹히면서 생태계의 순환을 이루고 공존하는 것이 자연인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과연 환경보호에 걸맞은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동물 권리주의 역시 인간 중심적인 사고라는 뜻이다.


멀리서 운송해 오는 값싼 식량 제품들은 유일하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마련할 방법인 지역 식량 생산을 파괴하고 만다. 바로 이런 이유로 어떤 국제 원조 기구도 세계 기아 문제의 해결책으로 채식주의를 권고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흔히 알려진 '소가 먹는 곡물의 무게보다, 소가 생산하는 고기의 무게가 훨씬 적다'라면서 채식의 근거로 알려진 사실도 정확히 계산해낸다. 소가 풀을 먹는다면 환경파괴는 훨씬 덜해지고 밀과 고기의 열량과 영양소까지 고려한다면 육식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채식과 육식의 여부보다 지역 기반의 식자재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 세계 기아 문제의 해결에 채식주의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곡물에 기초한 식단에는 전분과 당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 장에 과부하가 걸린다. 이로 인해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아직 소화되지 못한 음식을 내려보내는 악순환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렉틴 같은 물질이 혈액으로 흘러들어 간다. 이 렉틴은 위산에도, 소화 효소에도 분해되지 않는 식물성 단백질로, 이를 흡수한 체내의 면역 체계를 혼란시켜 우리 몸의 중요한 부분을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라고 지목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몸이 스스로를 공격하면서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류머티즘성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 건선, 제1형 당뇨병, 사구체 신염, 다발성 경화증과 같은 자가 면역 질환의 위험이 증가한다. 갑상선염에서부터 피부 발진, 천식 등의 다른 질병을 앓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영양학적으로도 채식은 사람의 건강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구석기 때부터 사람은 고기를 먹어왔고 잡식 동물로 진화해왔다. 내가 채소만 먹고 살고 싶다고 내 몸이 채소만 먹어도 건강할 수 있는 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진국에서는 성장기의 청소년과 아동에게 채식을 강요하는 것도 학대 일부로 본다. 정말 채식이 건강에 좋다면 왜 병원식은 채식이 아닌가? 정말 정부가 학생들의 건강이 나빠지도록 하기 위해서 학교 급식을 채식으로 만들지 않은 것인가? 이러면 채식주의자들은 낙농업계의 로비라고 하면서 음모론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 음모론 때문에 채식하는 사람들이 유사과학과 유사의학에 더 많이 현혹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과학계 사람들이 모두 로비 때문에 채식을 약한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 것일까?

3.

2번 항목에서 일부를 발췌하고 내 의견을 적어놓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훨씬 더 방대하고 치밀한 근거와 논거를 갖춘다. 수많은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한다. 내가 채식을 하면서 찾아본 책들에서도 육식이 몸에 나쁘다는 근거 대부분은 과학적 근거가 희박했다.

과연 채식이 사회적으로 권장될만한 덕목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채식은 개인적인 만족일 뿐이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저자가 말한 대로 자연적인 방식으로 지역 기반 농업이 환경문제와 기아문제를 해결하는데 훨씬 효과적이다. 사람의 건강에 좋지 못한 식단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 과연 더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나? 한국의 불교 스님들도 채식만 하면 몸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신자들에게 함부로 권하지 않는 현실이다.

국민에게 의료보장을 요구하는 이유는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건강이 사회 전체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편전쟁 이전 중국 사회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떠올려보고, 비만이 전염병도 아닌데 미국 정부가 왜 그렇게 비만율을 낮추려고 노력하는지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정부에 의료보장을 요구할 때는 공중보건의 이유를 대면서, 채식을 권유할 때는 사람들의 건강에 일부 손실을 주더라도 동물의 생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국민의 건강이 나빠지면 전부 의료보험 재정의 무리로 이어지는데 말이지.

채식이 사회적으로 권장되었을 때 그 결과도 우려된다. 동물권을 지지하면서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 중 여성 비율이 높거든. 노동운동, 성 소수자 운동 등등 사회 운동 중에서 동물권 운동이 여성 성비가 가장 높은 편이다. 채식이 권장된다고 해도 여성들이 채식을 더 많이 하게 될 텐데 여성들의 건강을 과연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한국 여권이 엉망이지만 그중에서도 괜찮은 것이 여성교육과 여성건강이거든. 다른 나라는 남녀 교육과 건강이 차이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데도 한국 20대 여성 중에서 헌혈이 가능한 사람의 비율이 높지 않다. 대부분 철분 부족으로 피가 뜨니까. 이런 상황에서 영양소 부족으로 이어지기 쉬운 채식을 장려한다라.

나는 채식이 사회적으로 권장되어야 할 덕목이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채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18-07-06)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