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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설날 연휴에 '사회불안장애 있는 남자가 불안이 줄어들면 축하할 일 아니냐'는 트윗 올렸는데, '남자를 모욕하는 것을 방해한다'면서 화내는 여자들이 있더라고. 단순히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삐진 정도가 아니라 진짜 증오를 보이던데.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예전 내 생각이 나서 적는 글.

내가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던 어렸을 때 '한국은 여자를 차별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여자인 나는 남자만큼 행복해질 수 없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좌절했어. 여성 혐오적 말을 하는 친구의 말에 지나치게 화내기도 했고. '여자를 차별하는 말을 했다 → 한국의 여성 혐오가 늘었다 → 그래서 내가 불행해졌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지. 그런데 과거의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우선,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행복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말과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완전히 다른 말이야. 의료보건 시스템이 잘 갖춰진 평균수명이 높은 사회에서는 사람이 오래 살 확률이 높겠지. 하지만 그 평균수명은 평균수명일 뿐이란 말이야. 장수하고 싶은 사람이 평균 수명이 긴 사회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지만, 수명을 늘리기 위한 선택을 할 수는 있지. 금연, 금주, 소식, 운동 등등. 내가 했던 생각은 '친구가 술을 마시자는 말을 한다 → 한국 사회의 음주문화를 확산시킨다 →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줄어든다 → 내 수명도 줄어든다 → 그러므로 친구에게 화를 낸다.' 수준의 비약인 거야. 이런 생각으로 친구에게 화를 내느니 차라리 운동을 더 하는 게 내 수명을 늘리는데 생산적이지 않겠니. 내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여성 차별 발언을 한 친구에게 화내느니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행동을 더 하는 것이 낫지.

여성 혐오가 만연한 사회라는 뜻은 '여성의 인생 종착역은 불행인 사회'라는 뜻이라기보다 '여성이 행복해질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라는 뜻이야. 게임으로 따지면 남자로 태어나면 이지모드, 여자로 태어나면 하드모드인거지. 하드모드를 끝내주게 잘 플레이하는 사람도 있잖아? 그게 나일지 누가 아냐. 하드모드가 주어진 것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절망해서 포기해버리지는 말자고.

두 번째로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은 '나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나는 행복을 쟁취할 권리가 있다'라는 뜻이야. '남이(특히 부모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라는 말이 아니라고. 어떨 때 내가 행복해지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러니 남이 아닌 내가 나를 행복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누구도 '나는 남을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만.

'나는 성평등한 사회에 살 권리가 있다'는 말은 '나는 성평등한 사회를 추구하고 이룩해서 누릴 권리가 있다'는 뜻이지 '남들이 나를 위해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낼 의무가 있다'는 뜻이 아니야. 도대체 내가 뭐라고 남들이 고생해가면서 나를 위해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내야 해. 그런데도 실제로 여성 전체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한 여자들이 있지. 감사하지 않니. 1945년 광복했을 당시와 2022년 지금의 여성의 지위는 완전히 달라. 수많은 여성들이 노력한 결과지. 나는 선대 여성들을 존경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

근데 '왜 나를 위해서 성평등한 사회를 이룩해내지 않냐'면서 다른 여자들을 미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그들의 자유야. 솔직히 여성 인권에 기여한 것은 키보드 두드린 것밖에 없으면서 여자 연예인들이 여성 인권을 떨어뜨린다고 여성 연예인을 욕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더라. 너는 여자 연예인들이 남자 연예인들보다 출연료 적게 받는 현실을 고쳐준 적이 있냐고. 근데 왜 여자 연예인들은 너를 위해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니. 생존하기도 힘든 것이 여성의 삶인데.

세 번째로 반드시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지적할게. 성차별을 의식하고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좋아. 근데 그게 파괴적인 사고로 이어지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니. 테러리스트들도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근데 그 해결 방법이 테러인 거야. 사회의 성차별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나 해결방법이 다른 여자 욕하기라면 차라리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편이 낫지 않니?

이제까지 여성운동가들은 축첩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혼인신고 운동이라는 방안을 제시했고, 재혼가정 자녀들이 고통받는 문제를 없애기 위해 호주제 폐지라는 방안을 제안했잖아. 여자를 욕하지 않고 지키는 방법을 찾아냈잖아. 이럴 능력이 없는데 굳이 페미니즘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니. 자기도 불행해지고 여성 혐오의 총량을 늘려서 여성 평균의 행복도 떨어뜨리잖아.

'내가 불행한 것은 한국이 여성 혐오 사회인 탓이다. 여성 혐오 사회인 이유는 아이유가 어린 여자 컨셉을 잡아서 그렇다. 아이유를 욕하자'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성평등한 사회가 와도 불행할 거로 생각해.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이 불행이유를 남 탓으로 돌리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잖아. 과연 이런 사람이 성평등한 사회가 온다고 행복해질까.

'내가 불행한 이유는 전부 여성 혐오 때문'이라는 강박을 갖는 여성이 몇몇 보이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해서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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