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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윤정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다른 여행객이 말했다. “나는 나한테 길 물어보는 사람을 피한다.”면서 “현지인에게 물어보지 않고 누가봐도 여행객으로 보이는 나에게 굳이 묻는 데에는 소매치기 등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내 눈에 그 여행객이 너무 똑똑해보였다. 뭐든지 아는척하기 좋아하는 나는 누가 나에게 무엇을 물어보면 아는척하기 신나서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동 대상 범죄자들은 어린이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어린이를 유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아동에게 ‘정상적인 어른은 어린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다른 어른을 불러주겠다고 말하고 피하라.’라고 교육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지. 도와주겠다고 따라갔다가 범죄의 피해자가 되면 안되니까.

작년에 트위터에서 어떤 사람이 계속 자살협박을 하면서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스님께 상담을 요청했는데 스님 왈, ‘수영도 못 하면서 물에 빠진 사람 구하겠다고 물에 뛰어들면 안된다.’ 맞는 말이지. 수영도 못하면서 사람 구하겠다고 뛰어들면 물에 빠진 사람이 두명이 될 뿐이다.

남을 돕기 전에 자신이 남을 도울 능력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을 도울 능력의 유무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여부다. 식수공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마을에 식수 공급 시설이 생긴다던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법률 지원이 생긴다든가 하는.

도움을 요청받으면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기분에 취해서 갖고 있는 자원을 낭비하면 안된다.

남을 돕는 데에는 자원이 들어가거든. 경제적 후원을 하면 돈이 들어가고 지속적인 연대를 하려면 사건을 계속 지켜보느라 시간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때로는 잘못된 점을 지적하다가 고소당할 위험이 높아지기도 한다. 본인이 좋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자원을 불필요한 곳에 소모해버리면 남에게 진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에 방해받을 수도 있다.

당장 도움이 급한 사람은 아무나 붙잡고 도와달라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도울 능력이 없는 사람이 도우려고 하면 실질적인 효과는 없고 돕는 사람의 자원을 착취하는 일이 발생할 뿐이다. 예를 들어 중학생이 30대 중반 성폭력 피해자에게 연대하겠다고 악플을 다느라 고소 당할 위험만 높아지는 경우. 중학생이 30대 중반인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사실을 돕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부정하니 부정적인 결과를 발생시킬 수밖에. 연대 받는 사람은 내 편이 한 명 더 늘었다는 생각에 기분 좋고 외로움도 덜해지겠지. 그렇지만 겨우 그런 효과를 얻으려고 앞날 창창한 중학생의 시간과 멘탈을 망가트리고 고소당할 위험을 높이냐.

이전에는 도움요청을 거절하는 사람을 보고 무지하고 매정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런 사람이 똑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거절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무리하게 남을 도우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남들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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