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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원 장원영

어제 기고를 받아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방탄소년단 지민을 떠난 익명덕후의 고백) 그런데 공지사항에 댓글이 달렸더라. 이런 댓글이.

기고문의 삭제를 요구하는 댓글

읽고 나서 답답했다. 그 글은 방탄소년단 지민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신공격을 위한 글이 아니었거든. 그 글은 방탄소년단 개인팬들의 다툼에서 선봉에 섰던 기고자가 자신의 팬 활동을 돌아보면서 쓴 회고록이었다. 그런데 그 글이 지민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글이며 인신공격하기 위한 글이라고 판단하다니. 어째서 그렇게 읽은거야.

최근에 읽은 좋은 칼럼이 생각났다. ‘공감은 언제 폭력이 되는가라는 칼럼인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공감은 마일리지 같은 것이어서 누군가에게 깊게 공감하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여력이 줄어든다. 내집단에 깊게 공감하는 사람일수록 외집단에 배타적이 된다. 과잉 공감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공감의 깊이보다 공감의 반경이 더 중요하다.’

아마 저 댓글을 쓴 팬은 지민에게 깊게 공감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글을 읽든지 '지민' 두 글자가 나오는 글이면 그 글을 지민에게 도움이 되는 글과 도움이 되지 않는 글 두가지로 나눠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민을 좋아하다가 떠난 팬이 쓴 글이니 지민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들어있는 것이 당연하다. 지민에게 좋은 내용만이 담겨있을 수 없다. 방탄소년단 관련 글이 게시된지 오래된 내 블로그의 공지사항까지 파악해서 댓글을 남길 정도로 지민 관련 여론을 관리하고 싶어 하는 팬이라면, 그 글의 내용에 더 깊게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고자도 그런 팬이었거든. 그런데 댓글쓴이는 그러지 못했다. 오로지 공감의 대상은 지민뿐이거든.

자신의 최애에게 과잉 공감을 하느라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진 것은 아닐까. 글의 기고자도 지민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지민에게 깊게 공감하느라 다른 멤버들이 싫어졌다고 했다. 지민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느라 다른 멤버들이 지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객관성도 잃어버렸다. 과연 이게 좋은 덕질일까? 최애에게만 공감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싫어지게 되는 덕질이?

최애에 대한 사랑은 확장되어야 한다. 나는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면서 세상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의 국적과 인종이 싫었는데, 방탄소년단을 보면서 인종 콤플렉스와 국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되었다. 내가 한국인인 것이 좋아지고, 한국인들이 좋아졌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일반상식이 부족한 모습을 보면서 내 지적 허영을 버렸다. 이전에는 기본적인 상식이 부족하면 마음속으로 무시했는데, 방탄소년단처럼 자기 일에 충실하느라 일반 상식을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건강하게 덕질한 사람이면 최애에 대한 사랑이 점점 확장되어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고 세상을 더 좋아해야 한다.

최애만 사랑하느라 다른 사람들을 모두 최애의 적으로 돌리는 것은 건강하지 못해. 사이비 종교가 그렇잖아. 세상을 저주하게 만들고 가족과 친구들과의 연을 끊게 만들고 오로지 교주 중심으로만 사고하게 만드는 것. 최애만 사랑한 나머지 최애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최애를 사이비 교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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