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임윤경이 쓴 <여자의 탄생>을 읽다가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올림. 탈코르셋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는데 그 고민을 해결해 주는 부분이라서.


1.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렌(Veblen)은 의복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세 가지로 정리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여성의 복장은 노동하지 않는 사람임을 증명하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복장은 노동과 상관없이 고안된 대신, 가족의 가장(남편/아버지)을 대신해서 가장의 경제력을 입증하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즉, 여성의 옷이 노동에 적합하지 않으면 않을 수록 그녀의 남편 혹은 아버지의 명예를 드높인다는 것입니다. p.41


이 말을 읽고 맞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실제로 여성의 옷들이 남성의 옷들보다 노동하기에 불편하고 주로 장식적으로 만들어졌잖아. 걸어다니고 움직이는데 방해가 되는 하이힐도 그렇고. 그러면 '여성적'으로 꾸밀 수록 노동에 부적합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잖아.


다만 여자 아이들이 예쁘고 깨끗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활동하는 데 편하도록 외모를 꾸미게 하는 것이, 이 다음에 어디에서 어떻게 살지 모르는 그녀들의 미래를 준비시켜주는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41


저자가 이렇게 주장기도 하거든. 이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연 나는 커리어를 쌓는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내 외모를 생각왔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더고.


2.

사회 활동에 필요한 공적 정체성 형성을 위해서 조언도 하는데, 거칠게 요약해보면

여성의 공적 정체성 형성을 위한 저자의 제안

1. 외모에 관한 지대한 관심에서 벗어날것

2. 성인으로서 자신을 표현하기(혀짧은 소리X, 의존적 태도X)

3. 자아실현이 아닌 경제적 자립과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커리어 재해석

4. 공적 영역에 걸맞은 정체성과 행동양식 변화(사적 관계로 해석X)

이렇게 되거든. 내용들이 설득력 있더라. 연애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자립하는 경제적 주체로서의 여성이 되기 위해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거지.


3.

여성이 태어나서 장난감 선택에서부터 사춘기, 대학생, 취업, 결혼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로 어떻게 여성이 여자로 길러지는지 설명해놓은 책임. 꽤 읽을만한 부분 많아. 여성리더십과 관련해서 많이 연구하고 강의하는 사람이서 그런지, 어떻게 대응해야할지도 나와있음. 청소년 대상 책이서 읽기도 쉬움. 절판된 책이라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야 한다는게 단점.


  1. ㅇㅇ 2019.01.21 01:28

    저자 제안 3에는 의문이 드네요. 자아실현은 제쳐두고 생계 수단만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여성은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으로 생계가 해결되었을 때 가장 빨리 퇴직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 텐데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남자와 결혼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은 직업에서 벗어나고 남자에게 의지하는 사례 많지 않나요.

그렇다면 루키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제일 궁금하고 의문도 많았던 부분이에요 저도 한때는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평가 당하는 것을 미러링한 이 운동이 꽤 의미가 있다고 보았었거든요 그런데 그 대상이 여성이든 남성이든간에 일단 루키즘 자체에 트라우마가 있는 여성분들이 계시다 보니까 참 생각이 많아지는것 같아요 궁극적인 목표가 여권 신장에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여성에게 상처를 준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아님 이것도 정서 분리의 문제로 보시나요??

루키즘 문제는 정서분리가 아닌 경우도 많죠. '비만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서는 '비만'이라는 속성을 비하해야하거든요. 그러면 비만여성이 상처받는건 당연하죠. 자신이 갖고 있는 속성을 비난했으니까요.

근데 이 루키즘이 미러링의 의미도 있지만 남성을 대상화한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미수다에서 '남자 키 180cm는 루저'발언이 그렇게 큰 후폭풍을 불러온 것은 남성의 신체도 수치화되어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 전에는 여자 가슴크기, 허리 둘레 등등 신체를 수치회해서 숫자로 몇kg 이상은 뚱녀라는 식으로 비하하는건 여자에게만 가능하다고 믿었거든요. 만약 미수다에서 그 분이 '나는 키 작은 남자가 싫어요'라고 했다면 남자들 대부분 '나 정도면 키가 크지'라면서 정신승리하고 넘어갔겠죠.

180cm 루저 발언은 분명히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이지만, 남성의 신체를 보는 시각을 전환시켜버린 발언이라고도 생각하거든요. 남자의 신체도 수치화되어 평가될 수 있다는 생각이요.

루키즘을 없애서 사람의 신체를 수치화하고 조롱하고 외모로 평가하는 일이 없는 것이 이상적이죠. 지금 여성들에게 적용되는 루키즘을 없애고 여남 모두가 루키즘에서 자유로워지는게 궁극적인 목표잖아요.

근데 과연 남성의 성적 대상화 없이 여성이 자유롭게 욕망을 표출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죠. 메갈 이후로 페미니즘 열풍이 불어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적인 욕망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남자들의 외모 언급을 하지 않고 이게 가능한가?하면 그게 아니잖아요.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풀어놓을 수 있다면 남성들의 외모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방탄 좋아하는 팬들이 자기는 유사연애가 아닌 유사육아라면서 자기가 유사연애하는 것도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봐도요.

여성인권 수준이 가장 높다는 북유럽에서는 여성들이 남성의 외모를 많이 본대요. 보통 여남 임금격차가 큰 나라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경제력을 많이 보고, 남자는 여자의 외모을 보잖아요. 여남이 평등해질수록 경제력과 외모를 보는 비중이 여남이 비슷해지는거지요. 그래서 북유럽만 유일하게 교육수준 높은 여성의 출산율이 높다는 통계도 나왔고요. 경제력 있어야 결혼이 가능하니까.

한국도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들고 여성의 경제력이 강해질수록 남성의 경제력보다 외모를 보는 비중이 늘어날거에요. 이게 올바른 상황은 아니지만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지요. 결국 남성의 외모 품평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일부 래디컬 페미니즘계열에서는 남성이 타깃이 되어야 루키즘이 사라질거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 않아요. 남자는 대상화되지 않고 여자만 대상화되는 상황에서 뭐가 아쉬워서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루키즘을 줄일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해요.

루키즘은 페미니즘 운동 수단이라기보다, 여성의 성적욕망을 풀어내고 경제력이 상승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 과정에서 루키즘으로 여성들이 상처받는걸 보면 루키즘을 제가 더 강화하기는 싫고. 저도 딜레마입니다.

(18-07-14)


2018/07/04 - [페미니즘] - 페미니즘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비난 받는게 싫어요


프리스틴 로아


페미니즘적 행보로 인해서 오히려 상처를 받게 되는 여성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루키즘으로 고통받으시는 분들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까인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고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보았거든요ㅜㅜ 여권 신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인걸까요?? 그들의 상처가 인권 운동 앞에서 축소되고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 슬퍼요

우선 '사랑하는 남자가 비난받아서 슬프다'라는 말에서 슬픈 이유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았기 때문’만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비난받았을 때 남자가 받는 상처의 크기’와 ‘사랑하는 남자가 비난받았을 때 여자가 받는 상처의 크기’가 다르잖아요.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이 비난받았다 사실 외에 상처받는 이유가 플러스알파가 되는 게 아닐는지요.

여권 낮은 나라에서는 남자의 유무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남자가 사회적, 경제적 울타리가 되는데 남편이나 아들 등 남자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여자는 생존조차 힘든 예도 있어요. 내전이나 테러가 일어나는 지역 등에서는요.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종속된 경우라면 정서적으로 독립되기가 힘들죠. 한국처럼 남녀 임금 격차가 40%에 달하는 나라에서는요.

60년대생들이 쓴 수기를 읽어보면 그 당시에는 시어머니가 아들 내외가 성관계하는 걸 방해하려고 아들 내외 사이에서 잠자는 경우도 꽤 많았고, 90년대 학번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들 성적이 떨어졌을 때 아들 여자친구를 물리적으로 폭행한 때도 많았고, 2000년대 초까지 여성잡지에는 ‘아들이 설거지하는 걸 보았다. 며느리가 너무 밉다’는 글도 실렸거든요. 내 아들이 왜 설거지를 해야 하냐면서요.

내 아들이 비난받으면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울타리가 무너지는듯한 위협을 느끼는 거죠. 대접받는 내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대접받는 느낌을 받기를 바랐는데 그 욕구가 무시된 느낌을 받고요.

2018년 지금 어머니들이 아들을 덜 사랑해서 밤에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서 잠을 자지 않고, 아들 성적이 떨어졌다고 여자친구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며, 아들이 설거지해도 며느리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죠.

다만 정서적으로 분리가 된 거지요. 아들이 다른 여자랑 사랑해도 상처를 덜 받고, 아들이 성적이 떨어진 것은 다른 여자 탓이 아니고, 아들이 며느리에게 왕처럼 대접받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일부 긍정하기 때문입니다. 점점 정서적으로 분리가 되거든요. 자신과 아들이 타인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들에 분노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거지요.

유럽에서도 여권이 상대적으로 낮은 남유럽권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밀착되고 정서 분리가 안 된다고 하지요. 최근 발표된 논문에서는 경제적으로 독립적이어야 여자들이 나쁜 결혼을 끝낼 수 있다고 하는데, 경제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남자에게 독립적이라서 가능한 거지요.

‘사랑하는 남자가 비난받아서 상처를 받는 게 두려우니 비난하지 말라’는 건 ‘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다른 여자가 착취당해달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익명 님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겠지만, 그런 위험성이 매우 크거든요.

저는 요즘 성폭행범 부모가 예전과 달리 ‘내 아들은 결백한데 꽃뱀이 꼬신 거다’라면서 성폭행 피해자를 괴롭히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폭행 피해자보다 성폭행 범죄자가 더 당당하게 나서고 ‘내 사랑하는 아들을 지켜야 한다’라며 성폭행 피해자를 괴롭혔던 과거의 성폭행 범죄자 부모를 생각하면 화가 나거든요.

‘내가 여자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고통’과 ‘내 남자가 비난받아서 받는 고통’ 둘 중에 후자가 더 크게 느껴진다면 글쎄요, 좀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여권이 신장할수록 ‘사랑하는 남자가 비난받았을 때 여자가 받는 상처의 크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비난받았을 때 남자가 받는 상처의 크기’의 정도로 줄어들 겁니다.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요. 남자와 자신을 분리 못 하는 걸 용인해주는 건 해롭다고 생각해요.

(18-07-04)

원문 링크: https://ask.fm/Amanda_Kim01/answers/149372950705


2018/07/14 - [페미니즘] - 루키즘을 어떻게 보시나요?


  1. DRR 2018.07.05 01:15

    페미니즘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제 최애 남돌에대한 자아의탁을 벗어난 게 이것 때문이었네요
    그 친구가 잘못한 건 성인인 그가 책임져야 할 문제고
    난 내가 더 소중해야하니까.
    감정이 식은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2. 2018.07.06 00:51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roois.tistory.com 주인 루이보스 티 2018.07.06 17:45 신고

      맞아요. 의존성 덜한 덕질이 중요하지요.

      저는 콘서트에 가게 된다면 아미밤3를 사야할것 같습니다. 이미 트위터에서는 같은 구역끼리 단톡방 만들어서 드레스 코드 맞춰 입고 오기로 했다는 소문이 도는 분위기도 있고... 공연장에서 소외감 느낄 것 같아서 아미밤3을 사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제 의지랑 무관하게 돈을 써야한다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아요.

  3. ㅇㅇ 2018.07.06 01:26

    팬들은 잘 모른데 자아의탁하는 팬들이 제일 빻은 짓 할확률이 높아요 내 새끼는 무조건 옳아-세상에 무조건 옳은게 어딨겠어요 내 새끼도 옳지못한 짓을 하는데 그걸 정당화 하기위해 내 새끼를 뺀 다른 멤버, 팬, 일반대중까지 패면서 해소하죠

손예진

트위터에서는 ‘탈코르셋’ 논란이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주로 워마드계 페미니스트들과 다른 경향의 페미니스트들이 부딪힌다. 워마드는 ‘외모를 꾸미는 것은 사회의 강요이자 억압이므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외모를 꾸미는 것도 꾸미지 않는 것도 여자의 자유다’라고 주장한다.

워마드는 여자들이 외모로 평가받는 외모지상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여자들이 화장하지 않고 투블럭컷 등의 머리 모양을 갖추는 등 사회가 원하는 여성의 외모와 다른 외모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다른 여자들에게 강요하는 과정에서 ‘여자들이 긴 머리카락 넘기는 건 푼수 같다’, ‘외모 코르셋을 안 벗는 여성은 주체적 애완동물이다’라는 등 여성 혐오적 발언들이 나오면서 늘 논란이 일어나고는 한다.

나는 여성의 외모에 관련된 논의 역시 페미니즘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우선순위 높은 의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굳이 외모에 관련된 논란으로 이렇게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있다. 그렇지만 트위터에서 논의되는 자유를 중심으로 입장 정리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기에 정리해보려 한다.

모든 자유는 동등하지 않다. 자유에도 우선순위가 존재한다. 연쇄살인을 할 자유를 인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자유를 동등하게 보장하면 사회 정책을 어떻게 세울 수가 있겠는가? 어떤 자유를 받아들이기 전에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부작용이 나타나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제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락사의 예를 들어보자. 안락사는 ‘사람은 죽고 싶을 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라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는 안락사의 도입을 미루거나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의료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나라에서 안락사가 도입된다면,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가정에서는 병원비를 아끼기 위해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해야만 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죽고 싶을 때 편안하게 죽을 권리’가 아니라 ‘돈을 아끼기 위해 죽어줘야 할 의무’가 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안락사의 도입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보장 시스템을 먼저 갖춰야 한다.

다른 문제도 있다. 아직도 여자가 결혼할 때 지참금을 충분히 가져오지 않았다면서 여자를 산채로 태우는 나라도 존재한다. 그런 나라에서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과연 여자가 아파서 병원에서 비싼 치료를 받아야 할 때 여자를 치료하려고 할까?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에서 여성들의 장기기증 비율이 높다. 주로 가족에게 장기기증을 하는데, 여성이 원해서 장기기증을 한 것이라고 하지만, 여성의 신체 건강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유와 권리를 도입했을 때 부작용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수자다.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유와 권리보장을 미뤄야 할 때도 있다.

이런저런 부작용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 결과를 낳을까 봐 안락사 도입을 미뤄서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 나는 진짜 순수하게 죽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피해 볼까 봐 안락사 도입이 미뤄진다니. 그렇지만 그런 사람으로서는 사회적 기반이 빨리 갖춰져서 안락사가 도입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 않나.

안락사가 도입된다고 해도 사회 정책을 세울 때는 ‘사람들은 최대한 살고 싶어 할 것이다’를 전제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 치료받고 싶어 할 것을 전제로 의료보험 비용을 책정하고 정책을 만들고, 의료기기와 의학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안락사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안락사 약품 개발은 부수적으로 해야지.

만약 그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은 안락사하고 싶을 것이다’를 전제로 정책을 세우면, 의료체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의학기술을 발전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입한다고 해도, '안락사하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가 디폴트이고 '안락사할 권리'는 옵션으로 따라오는 부수적인 권리다.

담배를 피울 흡연권과 담배 피우는걸 싫어할 혐연권 논쟁도 마찬가지다. 국민 보건과 건강을 위해, 흡연으로 건강이 나빠져서 건보료 재정에 악영향을 주는 사회적 영향을 위해 혐연권을 우선시한다. 흡연 장소를 정하고, 담배 가격을 올리고, 담배에 사진을 싣는 행위들이 그것이다. 흡연권과 혐연권 모두를 인정해주지만, 우선순위가 분명히 있다.

트위터에서 청소년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10대 흡연권의 경우, 결과가 우려되어서 사회적으로 도입되기 힘든 경우다. 10대가 흡연할 권리를 얻는다고 하자. 과연 그 권리장보장으로 나타난 결과가 모든 10대에게 평등할 거라는 보장이 있나? 부모 대부분은 자식의 흡연을 반대할 것이다. 통제하기 힘든 한부모 가정,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가정의 10대들의 흡연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폰 등의 온라인 접속 통제도 다른데 말이지.

선진국에서 청소년에게 담배 광고를 규제하자 담배회사들은 개도국의 청소년을 표적으로 삼았다. 담배, 음주 등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10대 때부터 허용하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건강에서부터 빈부격차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거든. 산업화시대 때 부르주아와 노동자들의 인종이 달라보였대잖아. 피부색은 물론이고 영양실조로 체격이 완전히 달라서. 지금 10대의 흡연과 음주를 금지하는 정책은 10대까지의 건강상태를 평등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10대의 흡연권을 주장하고 싶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10대의 성적 자기 결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원하는 사람과 섹스할 권리’와 ‘원하지 않는 섹스를 거부할 권리’ 중에서 후자에 더 무게를 싣는다. 섹스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섹스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은 죄책감을 심어주는 등의 방식으로 원하지 않는데도 섹스에 동의하도록 할 방법들이 많기 때문이다. 원하는 사람과 섹스하지 못했다고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원하지 않는 섹스를 거부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기니까. 미국에서 섹스할 수 있는 나이를 17세 정도로 정하고, 그 밑은 의제 강간으로 처리하는 것은 후자를 매우 강력하게 지지하는 예이다. 섹스할 권리보다 성적 착취를 피할 권리를 더 먼저 보장하겠다는 뜻이지.

이렇게 자유에는 우선순위가 분명히 존재한다. 서로 상충하는 자유도 있다. 각각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필요한 예도 있다. 자유를 보장했을 때 나타날 결과도 예측해서 고려할 수밖에 없다.

탈코르셋 논란은 ‘외모를 꾸밀 자유’와 ‘외모를 꾸미지 않을 자유’의 대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외모를 꾸미지 않을 자유’를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압력이 여성들에게 작용하는 것은, 여성들의 시간과 에너지, 금전 등의 자원을 자신의 외모에 소모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이다.

‘대다수가 외모를 꾸미지 않지만, 꾸미고 싶은 사람은 꾸미는 사회’와 ‘대다수가 외모를 꾸미지만, 꾸미기 싫은 사람은 꾸미지 않는 사회’라면 전자가 우선할 수밖에 없다. 흡연권과 혐연권의 문제처럼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고, 디폴트를 두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화장하는 것이 자유가 되려면, 화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아직 그런 분위기가 아니지. 외모를 꾸미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진정으로 외모를 꾸미는 것이 자유가 되지 않을까.

무조건 꾸미고 싶은 사람과, 무조건 꾸미지 않고 싶은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사람은 대부분 사회 분위기에 따라간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가는 대다수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은 꾸미지 않을 자유가 더 크게 보장되는 사회일 것이다.

워마드의 탈코르셋 운동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여자가 꾸미지 않는 사회가 꾸며야 하는 사회보다 낫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 '꾸미지 않을 자유'가 기본이고 '꾸밀 자유'는 부수적인 옵션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8/05/22)

AOA 설현

요즘 페미니즘을 명분으로 여자 아이돌들을 비난하는 일이 온라인 상에서 자주 일어난다. 페미니즘이 대중화 되기 이전에도 여자 아이돌들은 줄곧 비난받고는 했다. 표정이 좋지 않다고, 어투가 무심하다고 사소한 것들로 트집을 잡혔지. 페미니즘이 대중화 된 이후로 달라진 것은 여자아이돌을 비난하는 명분에 페미니즘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것 정도다. 여자 아이돌들을 원색적으로 인신공격하며 비난하는 곳은 주로 여초 커뮤니티다. 남초 커뮤니티는 여자 아이돌의 인격이나 성격에 관심 없고 오로지 몸만 보면서 성희롱을 하니까.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자매애가 왜 여자 아이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여자 아이돌들을 비난하는 논리는 이거지. '여자 아이돌들이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남자들에게 성적 환상을 제공하는데, 남자들은 그래서 성범죄를 저지르고 그런 이미지가 유통되어서 여성인권이 떨어진다(이하 S논리)'고. 그래서 여자 아이돌을 공격한다고. 근데 결국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남자들이잖아? 남자는 왜 욕하지 않아? 이러면 남자도 욕한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나의 아저씨>출연으로 아이유가 받은 비난의 양과 질, 이선균이 받은 비난의 양과 질을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걸.

S논리의 문제점을 말해보자. 애초에 데이트 폭력과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남자다. 그 남자가 무엇을 봤든지 상관이 없다. 영화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는 미국의 총기문화는 지적하지 않고 오로지 게임과 락 음악에만 총기 사고의 원인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볼링은 왜 원인이 되지 않는가'를 지적하면서 조롱한다. 데이트 폭력과 성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강간문화가 만연한 것은 지적하지 않고 왜 여자 아이돌에게 원인을 돌리는 걸까. 미투 운동에서 드러난 가해자들이 과연 여자 아이돌들 때문에 성범죄를 저질렀던걸까? 한국 사회의 복잡한 구조와 분위기는 제쳐두고,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을 끌어오려고 이유를 갖다 붙인건 아닐까? 정말 한국의 성범죄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이 여자 아이돌 때문인가?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자 아이돌이 한국에서 사라지면 되는가?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여자는 남자를 타락시키는 존재'라는 여성혐오는 뿌리 깊다. 사실 S논리 역시 여기에서 기인한다. 남자는 원래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인데, 여성이 유혹으로 남자를 타락시킨다는 논리. 원래 성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었던 남자에게 여자 아이돌을 보여주면 타락해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논리다. 남자는 죄가 없고 타락시킨 여자가 잘못이지.

80년대에는 남자가 시험에 떨어지면 그 남자의 어머니가 여자친구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고 여자친구에게 찾아가서 머리채 잡는 일도 흔했다. 60년대에는 남자가 병에 걸리면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면서 그 부인이 오히려 학대 받는 일도 흔했다. 2000년대 결혼 리얼리티 프로에서도 '나는 남자가 지저분하게 다니면, 남자를 욕하지 않고 그 남자의 부인을 욕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여성이 출연했었다. 남자가 잘못되면 남자는 그 책임에서 자유롭다. 그 책임을 져야하는건 그 주변의 여성이다. 이제는 성범죄의 책임을 성범죄자가 봤던 매체에 출연하는 여자 아이돌들이 져야한다.

한국의 슬럿워크 '잡년행진'

슬럿워크라는 운동이 있었다. 캐나다의 한 경찰이 '여성의 헤픈 옷차림이 성범죄의 원인'이라고 말한 것에 반발해서 일어난 시위였다. 사회적으로 '헤프다'고하는 옷차림으로 차려입고 '내 옷차림을 핑계로 강간하려 하지 마라'라고 외쳤던 시위였다. 여성은 무슨 옷차림을 하든지 성범죄에서 안전해야한다. '여자가 헤픈 옷차림을 입었기 때문에 성범죄가 일어난다'는 주장에는 반발하면서, '여자 아이돌들이 헤픈 춤을 추기 때문에 성범죄가 일어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거 이상하지 않나? 여자 아이돌을 비난하는 것은 성범죄자가 져야할 책임을 약화시키고, 성범죄자가 댈 수 있는 변명거리를 늘려주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이 S논리에는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 역시 존재한다. '나는 남자가 성범죄를 일으키도록 하지도 않고 페미니즘까지 배운 성녀이고, 여자 아이돌은 페미니즘도 모르고 남자를 유혹하기에 급급한 창녀에 불과하다'는 논리 아닌가? 각각 개별적이고 다양한 인격을 가진 여성들을 페미와 안티페미로 나누고 비난하는 논리가 어째서 페미니즘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알 수 없다.

이런 논리라면 마녀 사냥 역시 페미니즘적이라는 논리가 가능한데. 그 당시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서 고문당하고 화형 당한 여자가 없었을것 같나? 미국에서 흑인들이 당당하고 주체적이지 못해서 차별을 받는걸까? 아시안이 리더십이 없어서 리더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걸까? 여자가 주체적이고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성차별이 생긴게 아니다. 수동적이고 남에게 비굴한 남자들도 많거든. 차별 받는 원인을 차별당하는 사람들의 특징에서 찾는건,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 밖에 안 됨. 비굴하든 당당하든 차별받아서는 안 되고, 차별하는 사회를 개혁하는게 맞지.

이런 말을 하면 혹자는 '남자는 말이 안 통하는 가축이기 때문에 같은 여자를 설득하는거다'라고 반박을 하는데, 이래서 지나친 남성혐오는 페미니즘에도 좋지 않다는 거다. 남자는 채용에서 이득을 볼 때는 우월한 존재로 포장되다가, 성범죄 등의 책임을 져야할 때는 본능을 이길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 책임을 면제받는다. 남자를 지나치게 열등하게 생각하면 남자에게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진다. 남자도 호모사피엔스 종이다. 개혁되어야 할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성범죄의 원인까지 남자 대신 여자가 비난받아야 하는 상황은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나.

남자는 변화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에 남자를 사용하는 남자사용설명서를 배워서 남자가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여자가 노력해야한다는 논리 아닌가. 남자는 변하지 않는 상수에 놓고, 여자가 노력해야하는 변수가 되어서 여자가 움직여야 한다는 논리가 과연 이로울까.

여자는 구조의 책임에서 자유롭다. 여자가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를 만들고 변화시킬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를 기획하고, 제작을 하고, 제작비를 받아오고, 방송국 편성 시간을 받고, 전파를 타게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도대체 여자의 힘이 얼마나 들어갔을것 같나? 그런데도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사람은 아이유다. 왜 여성혐오의 책임까지 여자가 져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여자 아이돌을 욕하는건 페미니즘과 전혀 상관이 없다. 케케묵은 여성혐오 논리에서 나온 발상에 페미니즘의 글자를 갖다 붙인다고 페미니즘이 되는게 아니지.

(2018-05-21)


  1. 2018.09.07 15:11

    비밀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항상 글 잘 보고 있습니다ㅎㅎ 루이님 트윗이나 에스크 찾아보다보니 아미들을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해서 꽤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더라구요. 물론 저도 취향의 남성이 여성을 비판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소비하는 팬들에 의해 방탄이 돈을 벌고 영향력을 갖게되는것이잖아요. 방탄은 현재 비판을 함으로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것도 아니구요. 그 방법이 잘못된것은 맞으나 자신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있는것이니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안녕하세요 익명님.

글 잘 보고 있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아미들을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이하 W집단)을 부정적으로 보는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익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분들은 아미들을 공격하는 것이 여성혐오를 없애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식이 불매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W집단은 불매운동만이 방탄소년단이 여성혐오적 가사를 생산해내는걸 막을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까 아미들을 공격하는거고요.

불매운동은 한계가 있거든요. 불매운동은 소비자 정체성을 강조해요. 소비자로서만 힘을 미칠 수 있다고 믿죠. 페미니즘은 소비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인권과 정치이념이에요. 소비자가 아닌 정치적 주권자로서 접근해야하죠. 불매운동도 그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부수적인 수단이어야해요.

불매운동은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문제점도 있고요. 촛불시위에 나가는 모습이 깨어있는 시민들의 행동으로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의회 레버리지가 고갈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국민들의 요구사항이 국회를 통해 대의제로 해결되지 못하니까, 시민들이 생업을 접어가면서까지 촛불시위에 나서는거잖아요. 마찬가지로 불매운동도 마찬가지에요. 제품의 성분을 일일히 확인하는 소비자가 많다는건, 그만큼 그 나라의 식약처가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옥시사건처럼요. 식약처가 일을 잘 한다면 소비자가 일일히 성분을 확인할 필요가 없죠. 사회의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지요. 옥시 기업이 망해야하니까 옥시를 사는 소비자를 비난하는게 아니라, 제대로 일처리를 못한 식약처와 옥시가 망할정도로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추징하지 못하는 소비자법을 문제삼아야하지요. 소비자를 비난하는건 너무나도 편하지만,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요.

불매운동이 가능한 재화는 한정되어 있어요. 옥시 불매와 남양 불매가 성공할 수 있었던건 대체 제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양 커피믹스를 마시다가 동서 커피믹스를 마시는건 큰 희생이 아니죠. 그렇지만 건설사가 심각한 사건을 일으켰다고, 그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를 불매운동할 수 있나요? 부동산은 대체할 수 없죠. 같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12층과 13층의 가격이 다른데요. 입지조건이 달라지는데다가, 가격도 비싼데 불매운동을 하라고 할 수가 있나요? 아이돌도 마찬가지에요. 방탄소년단의 여혐 가사를 알 정도라면, 쉽게 다른 아이돌로 대체해서 소비하는게 힘들다는건 알거에요. 방탄 좋아하던 팬에게 엑소 좋아하라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면 아이돌을 좋아하는걸 끊으라고 하는건데, 그건 또 다른 문제에요. 취미생활과 유사연애를 없애버리라는 것과 같은 요구니까요. 애초에 받아들여지기 쉬운 요구가 아니에요.

시장에서 소비자를 비난해도 될 때는, 소비자가 부당한 요구를 하는데 공급자가 응해서 결과적으로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때죠. 트위터에서 논란이 되었던 언리쉬드 문제처럼요. 소비자가 아동성도착적 작품을 요구하고 공급자가 그에 응해서 아동성착취 혐의가 있기 때문에 소비자와 공급자 둘 다를 비난하는거죠.

그런데 아미들이 방탄소년단에게 여성혐오적 가사를 요구했는가하는 의문을 가져보면 그게 아니라는거죠. 아미들이 방탄소년단에게 요구한 것에 여성혐오라는 이물질이 묻어나왔다고 보는 해석이 더 맞다고 생각해요. 여성혐오적 가사로 아미들이 이득을 본것도 아니죠. 오히려 애써서 옹호하고, 대신 비난받으면서 욕받이 역할까지 해야했으니까요. 그런데 아미들에게 책임을 묻는게 맞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는거죠.

방탄소년단의 불매운동에 집중하는 것은 여성혐오 가사 문제를 특정 그룹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부작용도 낳지요. 방탄이 여혐가사를 썼지요. 근데 이게 과연 방탄이라는 특정 그룹의 문제일까요? 방탄만 없으면 여혐가사의 문제가 사라지는걸까?

회사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하는 이유는 성범죄가 문제있는 특정인에 의해서 생기는게 아니라 강간문화와 연결지어있다는걸 인지하기 때문이죠. 남자들이 ‘성범죄는 몇명만 일으키는데, 모든 남자를 다 예비성범죄자 취급한다’고 불만을 갖죠. 아니요. 성범죄는 몇 또라이들이 일으키는게 아니에요. 성범죄를 일으켜도 되는 시스템과 제도 내에서는 누구든지 성범죄를 일으킬 수 있어요. 미투운동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라는걸.

W집단은 여혐가사가 나오게 된 배경, 앞으로 어떻게하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가 등등의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아요. 그저 방탄만 없애면 된다고 오로지 아미들을 비판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요.

사실 저는 W그룹을 의심해요. 정말 여성혐오를 없애기 위해 진지한 고민에서 아미를 비난해야한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인지, 아니면 아미를 비난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 붙인것인지 둘 중 어느 것인지 모르겠어요.

여성을 착취하며 생산되거나 여성혐오를 확산시키는 생산물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소비 윤리는 감동적이죠. 그런데 정치적으로 공정한 소비윤리는 쉽지 않거든요. 과연 W집단이 입고 있는 옷들 중에서 3세계 여성을 착취하지 않고 만들어진 옷이 몇 벌이나 있을지 궁금하죠. 섬유의 원재료, 섬유 직조과정, 염색, 가봉단계 등등 중간에 3세계 여성의 노동착취 없이 만들어진 옷이 몇 벌이나 될까. 특히나 스파 브랜드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인데 말이죠. W집단이 쓰고 있는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삼성 반도체는 어떻게 생각하는거지? 대부분이 여성노동자인 공장에서 벌어지는 백혈병 논란은?

정말 진지하게 자신들이 소비하는 모든 것에서 여성착취와 여성혐오의 혐의를 발견해서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고, 방탄의 여혐 가사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그걸 위해서는 다른 여성을 공격하기까지 해야겠다는 결론을 도출해낸걸까?

환경론자들은 그러거든요. 탄소배출량으로 계량화해요. 그래서 대부분의 제품의 생산과정과 소비, 폐기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확인하죠. 그래서 여기까지는 허용해도 되고, 이것들은 위험하고, 이것들은 퇴출대상이고 그런식으로 기준을 정하는거죠. 합리적으로. 그래서 데스크탑보다는 환경오염이 1/3 정도 되는 노트북을 사고, 커피보다는 녹차를 마시라는 조언이 나오죠. 인간이 환경오염을 아예 시키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보다 합리적인 기준선을 제안하는거죠.

그런데 과연 W집단도 그래서 방탄의 여혐가사 소비를 비난하는걸까? 그 합리적인 기준선 밑이라서?라는 의문이 생기죠. 대부분의 건물은 남성인부들보다 여성인부들에게 적은 임금을 지불하면서 지어져요. 도로 역시 마찬가지죠. 여성혐오로 만들어진 모든것을 소비하지 않으려면 무인도에가서 벌거벗고 사는 수 밖에 없거든요. 지구를 떠나려고 해도 우주선이 완전히 성평등한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게 아니죠. 그런데 W집단이 아미를 비난하는걸 보면 본인들은 여성착취적, 여성혐오적 소비를 전혀 하지 않는 순결한 존재라고 믿는 느낌을 받아요.

저는 W집단이 방탄을 비난하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이유와 비슷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성경에 나타난 수 많은 금기들 - 거짓말하지마라, 간음하지 마라 - 등등은 지킬자신이 없지만, 동성애하지말라는 말은 지킬 자신이 있지요.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그래서 동성애자를 편하게 비난하는거죠. 다른 금기는 무시하고. W집단 역시 마찬가지 아닐런지요. 다른 여성혐오적, 여성착취적 소비를 하지 않을 자신은 없는데 방탄을 좋아하지 않을 자신은 있으니 아미는 마음 편하게 비난할 수 있는게 아닌지? 모든 여성혐오적 소비는 무시하고 방탄에 집중하면서요.

그렇게 꼬리자르기로 아미에게 불매운동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라면서 떠넘겨요. W집단은 아미를 비난할 때 여혐가사가 얼마나 사회에 심각한 문제인지 과장해서 주장하죠. 그렇게 중대한 문제라면 불매운동으로 해결하면 안되죠. 사회적으로 해결해야죠. 아동포르노를 아청법으로 해결하듯이. 근데도 불매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대요. 오로지 아미만이 해결할 수 있대요. 아미들은 중대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명감을 띈 히어로인걸까요?

본인들도 할 수 있는게 있잖아요. 미스코리아 대회가 지상파로 생중계되던 시절이 있었죠. W집단처럼 불매운동만 가능하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은 전통적인 페미니스트(이하 페미니스트)들은 불매운동으로 해결하지 않았어요.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고, 안티미스코리아 대회 등을 벌여서 다양한 미의 기준을 제시하려고 했죠. 안티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릴 때마다 뉴스에 나왔어요. 그 때마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가 나갔죠.

사실 빅히트에서 방탄의 여혐가사 피드백을 한 것도 불매운동 때문이 아니라 동아일보에서 기사화를 한 뒤였어요. 불매운동보다 공론화가 더 효과적이었던거죠. 그러니까 아미가 아니더라도 여혐가사가 미칠 사회적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거에요. 아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필요 없이요.

그렇게 남자 아이돌의 여혐가사가 사회에 미칠 영향이 걱정된다면, 다른걸 하면 될텐데요. 저처럼 키보드로 떠들기라도 하던가요. 헐리우드에서 이제는 여혐영화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 벡델테스트가 최저기준선이 되었죠. 벡델테스트 개발자가 여혐영화 불매운동을 통해서 만든게 아니거든요. 블로그 운영하면서 남자아이돌이 신곡을 낼 때마다 멜론에서 가사 옮겨와서 여혐가사가 있는지 분석해보든가요. 성별지칭어가 있는지, 여성을 얼마나 성적대상화하는지 등등 각각 요소별로 체크해서 로튼토마토처럼 점수를 매겨보든가. 그러다보면 알아요? 벡델 테스트처럼 여혐가사를 피하기위한 최저 기준선이 생길지요. 이거 쓰다보니 괜찮네요. 저도 해보고 싶은데, 다른 분이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방법이 많을걸요.

남돌의 여혐가사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왜 다른 남돌들이 가사를 수정하고 뮤직비디오까지 수정했을 때 그 남돌과 그 팬덤을 칭찬하지 않았던거죠? 훌륭한 팬덤이라고 띄워줬으면 납득하죠. 근데 그래봤자 남돌이라면서 무시했잖아요. 그 노력들을. 어차피 수정해도 싫어하고, 수정하지 않아도 싫어하는데 왜 수정을 하겠어요. 왜 팬들이 그렇게 노력을 하겠어요. 상대방을 움직이기 위한 수단은 비난 밖에 없다고 믿는걸까요? 불매운동 안 한다고 비난만 하면 다 된다고 믿는걸까요?

W그룹은 왜 불매운동을 제외한 다른 방법들을 생각하지 못하는지, 왜 아미들에게 다 떠넘기려고 하는걸까요. 사실 W그룹은 모든 여성혐오문제를 불매운동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결혼이 여성의 삶을 힘들게 하는 제도로 지목되면 비혼을 하면 되고, 한국이 여성혐오가 심한 나라면 탈조선을 하면 되고, 한국남자가 여성혐오가 심하면 연애를 안 하면 된다고요.

근데 인간도 동물이란 말이죠. 그렇게 쉽게 번식본능을 저버릴 수 있었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종했죠. 동물들의 배변으로 근근히 연명해야할 정도로 열악한 아오지 탄광에서도 성욕이 있는게 사람이란 말이죠. 그리고 사람마다 식욕이 다르듯이 성욕도 다 다를텐데, 적은 성욕을 타고난 여성에게 유리한 룰이란. 성욕이 적을수록 페미니스트에 더 가까워질 수 있군요.

사실 이런 주장의 전제가 여성혐오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자신이 있을까요? ‘세상을 지배하는것은 남자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다’류의 진부한 문장이요. 여성들이 남성을 불매운동하고 도도하게 행동할 수록 남자들이 기어서 여성들이 원하는대로 다 맞춰줄 것이라는 주장이요. 정말 이러면 사회의 여성혐오가 적어질까요?

문제가 된다면 버리느냐, 개선을 하느냐 두 가지 선택이 있죠. 그런데 W집단은 거의 늘 항상 버리는걸 선택해요. 아이돌 문화의 여성혐오가 문제 되면 아이돌 산업은 여성혐오 산업으로 낙인찍고 버려야한다고 주장하죠. 그러면 아이돌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스탭들은 여성혐오에 이바지하는건가요? 만약 3대 기획사 사장 중 한 명이 여성이 된다면 그 여성 역시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는 여성혐오자인가요?

불매운동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좁히는 활동이에요. 뭔가를 배제해야한다는거죠. 이렇게 여성혐오로 문제가 될 떄마다 배제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여성의 선택권은 더 좁아져요. 불매가 아닌 개선을 선택하는 것이 여성소비자에게는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어요. 계속 이것도 하면 안되고, 저것도 하면 안되고. 여성혐오혐의가 있는 모든 산업과 문화를 배제해야한다면 도대체 뭐가 남는지요.

불매운동으로 여성인권이 향상된 경우는 많지 않아요. 90년대 한국 코미디에서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든 여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서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여자가 놀림거리가 되는거죠. ‘오죽 못났으면 남편에게 맞고 살아’라면서요. 요즘 코미디에서 못생긴 여자를 웃음거리로 삼듯이요. 그 장면을 보면서 주부 방청객들이 웃는 장면은 지금보면 기괴하죠.

‘오죽 못났으면 남편에게 맞고 살아(나는 저렇지 않아서 다행이다)’를 되뇌는 주부들. 요즘의 W그룹과 비슷하지 않나요. 결혼한 여성들을 비웃으면서 결혼불매운동을 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요. 반면에 페미니스트들은 그 동안 가정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리고, 가정폭력의 범죄화를 주장했죠. 형사처벌과 경찰 개입을 주장했고요. 다른 여성들이 폭력에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자매애에서 시작된 마음이었죠.

2018년에 90년대 대한민국 코미디와 같은 주장을 하는 W그룹이 어째서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임신으로 남편에 굴복할 수 있는 여성에게 면박을 주고 비웃는 그룹이 있고, 피임법을 보급하는 그룹이 있죠. 힘든 결혼 생활을 하는 여성에게 결혼불매를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그룹이 있죠. 반면에 이혼할 때 여성도 양육권을 가질 수 있도록 투쟁하고, 전업주부도 재산분할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투쟁했던 집단도 있고요.

가정폭력 범죄화를 주장했던 페미니스트들이 모두 다 가정폭력의 희생자였을까요? 그래서 가정폭력 당하는 다른 여성들이 해야한다고 떠넘겼을지?

이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성추문이 문제가 되었을 때 힐러리는 강하게 공격하지 못했죠. 남편 빌 클린턴이 재임중에 일으킨 성추문이 한두개가 아니었으니까요. 트럼프를 비난하면 니 남편은?이라는 공격이 날아오니까. 그래서 성추문없는 오바마를 남편으로 둔 미셸 오바마가 대신 트럼프의 성추문을 공격해줬죠.

힐러리까지 되는 여성이 성추문을 일으킨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다고, 여성으로서 여성인권과 관련된 문제에 발언하는 발언권까지 박탈당하는 이런 상황이 문제 없다고 보시나요? 남편이 여성혐오를 일으켰든 아니든 발언권은 있어야죠. 여성인데. 그런데 W그룹은 남성불매운동을 하지 않는 여성의 여성지위를 박탈하고 싶어해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여권신장인지.

‘여자 신데렐라가 남자 신데렐라보다 더 많다’는 현실은 여성혐오적이죠. 그만큼 여성은 남성만큼 배우자의 경제적 계층을 상승시켜줄 정도로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경우가 적다는 뜻이니까요. 재벌가 여성보다 재벌가 남성이 배우자 선택이 더 자유로운 것에서 보듯이 여성이 배우자 선택에 제약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근데 W그룹은 ‘여자 신데렐라가 남자 신데렐라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남자는 여자한테 목메는 열등한 존재야’라면서 남자를 비난하는데 쓰고 말거든요. 그래서 여성이 결혼불매를 하면 남자들은 목메게 되어있고, 그걸 무기로 삼아야한다고요. 아니요. 그 반대로 ‘결혼해서 인생 망한 여자가 결혼해서 인생 망한 남자보다 많다’는 현실도 지적해야죠. 결혼에 의해 휘둘리는 여자의 인생이요. 불매운동에 집착하면 이렇게 중요한 사회 현실도 놓쳐요.

누군가를 배제하고 불매하기 위해 페미니즘이 존재하는게 아닌데 말이죠. 페미니즘은 다른 여성보다 더 훌륭한 남성을 만나서 더 잘살기 위한 권리를 보장해주는게 아니에요. 어떤 남자를 선택하든지 안전하도록 하기 위함이죠.

W그룹은 그 기본적인 사실을 위반하잖아요. 3세계에서 남자가 성폭행했는데, 그 징벌로 그 남자의 여동생이나 딸을 성폭행하는 경우도 있죠. 남자의 잘못인데 남자의 소유물인 여자를 성폭행하는 걸로 징벌하는것이요. 방탄 여혐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방탄의 잘못인데 방탄의 팬인 아미들의 평판과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징벌하고 싶어하는 욕망이요.

인도의 한 마을에서 ‘밥을 태우는 등의 실수를 부인이 했을 때 남편이 폭행하는 것은 정당한가’라는 설문을 했을 때 여성조차도 동의한다는 비율이 60%를 넘었죠. 교육해도 효과가 없었어요. 그러다 TV가 보급되고 드라마가 방영되니까 그 비율이 20%였나 순식간에 떨어졌지요. 드라마로 가정폭력이 없는 가정의 모습이 중계되니까, 가정폭력이 필요없다는걸 깨달았다는거죠.

W그룹은 이처럼 효과적인 전략을 생각해본적은 있는걸까요? 그냥 비난하면 내 말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 비난이 남성에 의해 여성의 평판이 좌지우지되는 여성혐오의 속성을 강화하는건 외면하고요?

여성혐오가 독특한건, 피해자를 공격하면 피해자가 오히려 숨는다는거죠. 가정폭력 역시 한동안 맞는 여자가 못난 여자라는 인식이 있어서 오히려 피해자가 숨었어요. W그룹이 아미들에게서 여성의 지위와 발언권을 박탈하려고 하면 도대체 누가 이득을 보죠?

‘니들이 여성혐오 공론화해서 문제를 알리면, 어차피 니들도 같이 욕먹어’라는 내부자를 다그치는 논리가 아미 내부에서 나오지 않을거라고 확신해요? 아미들 사이에서도 여성혐오 가사를 공론화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해시태그, 팩스 총공 등의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팬들이 있어요. 그 팬들은 같은 아미들에게도 비난받고, W팬들에게는 어차피 남돌팬이라면서 비난받지요. W그룹이 아미를 비난하면, 아미 내의 페미니스트들에게 힘이 실릴지, 여성혐오를 묻어버리고 싶어하는 그룹에게 힘이 실릴지요?

전략적으로 생각한다면, 여성혐오를 공론화하는 팬덤을 칭찬하고 우호적으로 만드는 분위기가 있어야하잖아요. 근데 아니란 말이죠. 그냥 남자아이돌 팬은 다 비난하는데, 여성혐오 문제를 일으킨 팬들은 더 비난하고. 도대체 여성혐오 가사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저는 이런 이유로 W그룹에 부정적이에요.

(2018-05-08)

원문 링크: https://ask.fm/Amanda_Kim01/answers/148104079793


2018/06/11 - [페미니즘] - 워마드가 방탄소년단 팬을 공격하는게 불편한 이유?

2018/06/11 - [페미니즘] -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 피드백을 요청해봤자 소용없는데 왜 하지?





  1. 와아아아 2018.07.05 14:16

    아미는 아니지만 루이보스티님 항상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고찰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보니 아는 것도 되게 많으시네요...신기... 새로운 지식 (?) 페미니즘에 대헤 더 배워가는 거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당:)

  2. . 2018.08.14 23:49

    궁금한 게 있습니다. W그룹이라고 칭하시는 게 워마드 같은데 거기는 그냥 남성혐오주의 아닌가요? 여성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거라서 그냥 페미니즘도 싫고 남자도 싫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방탄 팬들을 패는 것도 남성을 혐오하는데 남성을 덕질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물론 여혐 논란이 제일 먼저 떠서 일지도 모르지만요


0.

최근에 아이유가 <나의 아저씨> 출연을 결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요. <나의 아저씨>는 데이트 폭력 미화 혐의가 있는 작품이니까요. 아이유가 데이트 폭력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데에,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지요.

여기까지는 있을 법합니다. 그렇지만 <나의 아저씨> 작품보다는 아이유에게만 비난의 화살이 몰리는 건 비합리적인 일이죠. tvN 드라마국 국장, 드라마 작가, 드라마 PD보다 아이유가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더 큰 영향력을 과연 끼쳤을까? 요즘 내로라하는 배우들도 작품이 없어서 작품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까지 고려하면요. 아이유에게 지나친 비난이 몰리는 이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1.

아이유는 과거에 ‘팬들을 언젠가 한 번 실망하게 하고 싶다’라는 등의 위험한 여자로 이미지 전환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꾸준히 드러내 왔죠. 과거 문근영 씨처럼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국민 여동생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지요. 위험한 여자로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 하는 건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아이유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싶어 하는 금기는 여성주의자들이 깨고 싶어 하는 가부장적인 낡은 질서에서 나온 금기가 아니었죠. 여성주의, 인권주의자들이 큰 노력을 기울여서 만들어낸 데이트 폭력 금지, 아동 성 착취 금지 등의 금기 위에서 줄타기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이 점이 여성주의자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에 지쳐있는 여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다 노래 <스물셋> 뮤직비디오의 소아성애 논란으로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이 폭발했고, 아이유는 그 이후에 꽤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죠.

그 이후에 출연작품이 <나의 아저씨>라니, 아이유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아이유는 반페미니즘적 인물로 단단히 찍혀서 비난을 받고 있지요. 아이유가 이렇게 성공해서는 안 된다, 아이유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로요.

반면에 <나의 아저씨>에 출연하는 다른 출연진은 비판받지 않고 있고요. 이선균 씨가 아이유 씨가 비판받는 10%만큼이라도 비판을 받고 있는지? tvN에서 하는 드라마라는 걸 알긴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아이유에게 과도한 비판이 몰리는 것 역시 여성 혐오의 혐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아이유가 <나의 아저씨>에 출연함으로써 <나의 아저씨>의 인기가 더 높아졌다는 걸 들어 아이유를 비판해야 한다고 하는데, 아이유의 출연 결정은 그 영향력을 더 크게 만든 것 뿐이에요. 아이유가 출연하지 않았다고 정말 그 드라마가 엎어졌을까요? 아이유만 생각을 바꾸면 데이트 폭력을 미화하는 작품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여성 혐오적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과 사회적 분위기 지적보다는 아이유 한 명을 공격하는 분위기에 과연 여성 혐오가 없을 수 있을까요. 아이유가 은퇴하면 여성 혐오적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않나?

2.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유는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고,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더 비판받아야 한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게 바로 여성 혐오에요. 여성에게만 많은 기대를 하는 것도 여성 혐오의 일종이에요. 시어머니가 아들에게는 하지도 못할 요구사항을 며느리에게 ‘같은 여자니까 너는 내 마음 이해하지’라면서 당연한듯이 요구하는 것도 여성 혐오인 것처럼요. 여성에 기준선을 높이는 거죠.

아이유가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죠. 그 영향도 저는 꽤 과장되어있다고 생각해요. 아이유를 공격하기 위해서요. 다른 데이트 폭력 미화 작품의 영향력보다 <나의 아저씨>의 영향력을 더 과장하는 거죠.

인기 많은 아이유가 수동적인 여성상을 사회에 유통하니, 아이유의 영향력이 축소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그렇죠. 아이유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큰 것이 아니라 다른 여자 연예인들의 영향력이 약한 게 아닐까요? 아이유가 존재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여성 솔로 아이돌의 부재가 문제인 거죠. 과거에 엄정화-이정현-김현정이 동시에 존재했던 시절이나, 보아-장나라-이효리처럼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존재한다면 다양한 역할 모델을 보여줄 수 있었겠죠. 아이유의 파이가 큰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 연예인들의 파이가 적어서 상대적으로 아이유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 보이는 거겠죠.

이런 말을 하면 ‘나는 다른 여자가수 응원도 하고, 아이유 끌어내리기도 할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죠. 그런데 아이유를 끌어내리면 아이유가 먹었던 파이를 다른 여자 가수가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요? 여성 가수 시장만 좁아지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요?

엄정화-이효리-아이유로 이어지는 여성만능엔터네이너 계보를 잘라먹으면 누가 이득을 보죠? 이효리가 서른 살이 되어갈 즈음 얼마나 불안해하고 외로워했는데요. 그나마 엄정화를 보면서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데. 그 계보가 잘리면, 그다음 세대의 여자 솔로 아티스트는요? 지금 미래 고민 많은 여자 아이돌들이 아이유의 존재에 얼마나 환호하는데, 아이유가 인기가 줄어드는 걸 과연 여돌들이 반길까요?

3.

여성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으로 치부되고, 여성의 실패는 여성 전체의 실패로 과장되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늘 최초로 금녀의 벽을 깬 여성은 ‘내가 잘못하면 다시는 이 분야에서 여성이 못 들어올지도 모른다’라는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리고요. 이번 탄핵 사건도 그러지 않았나요? 여성 대통령 박근혜가 실패해서, 추미애가 이끄는 제1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이정미 헌재소장 대행이 판결문을 읽어내리는 여성 정치사에서 중요한 장면이었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근혜의 실패만 끄집어내서 ‘여성 리더십의 실패’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 했어요.

아이유를 둘러싼 사태에서도 이 점이 보인단 말이죠. 아이유의 성공은 그저 개인적인 영광으로 치부하고, 아이유의 잘못은 사회적 영향력의 문제로 확대해요. 아이유가 수동적인 여성상을 사회에 유통하는 게 문제라면, 아이유의 성공으로 힘을 얻는 다른 여성들의 모습에도 주목해야죠.

대한민국 탑 싱어송라이터로서 아이유가 갖는 상징성은요? 기획사가 잡아준 컨셉만을 소화하는 아이돌이 아니라 직접 작사·작곡을 하면서 엄청난 저작권 수익을 올리고 있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성과 실력을 인정받는 여자 가수의 존재가 과연 무가치하다고 할 수 있나요?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면서 우뚝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아이유에 환호하는 여자 아이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한 분야의 탑이 여성이라는 것, 그게 다른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데요. 아이유가 다른 여성들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은 무시되고 있어요. 오로지 부정적인 영향력만 과장되죠.

4.

아이유를 둘러싼 논란은 성공한 여성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을 때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기도 해요.

저는 여성 혐오적 남성이 있던 자리에 여성 혐오적 여성이 들어가는 것도 진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성 혐오적 남성이 있던 자리에, 비리도 없고 깨끗하고 인성도 바른 여성이 들어가야만 진보가 아니라요.

성공한 여성 CEO 기사에 이 CEO에 너무 환호하지 마라, 이 사람도 비리 저질렀고, 무슨 잘못을 했고, 그러니까 칭찬하면 안 되고 어쩌고. 남성 CEO는 원래 그러니까 지적을 안 하는데, 여성이니까 지적하는 거랍니다. 완전하지 못하다고요. 완벽한 여성의 성공만이 성공이라니욬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말을 하면 생물학적 성별이 뭐가 중요하냐, 성 평등에 도움이 되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차별하는 사람이 생물학적인 성별을 놓고 차별하는데, 어떻게 생물학적 성별을 무시할 수가 있죠?

참여정부 당시에 강금실이 여성 최초로 법무부 장관 자리에 올랐죠. 검찰 간부들은 ‘딸뻘이네, 어떻게 여자가, 말 안 들을 거다’ 이런 말을 대놓고 해가면서 말 안 듣겠다고 단합을 했고요. 이런 모습을 남자 장관 앞에서도 보일까요? 우병우가 머리 좋아서 사법시험을 일찍 붙었다고 나이 많은 후배들에게 빈정거리면서 무례하게 굴어도 찍소리 못했던 게 검찰들이에요. 근데 전설 변호사였던 강금실 앞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래요.

레임덕이 온 정권 말기도 아니고, 권력 짱짱한 이제 갓 출범한 정부에서 처음으로 임명한 장관 앞에서 이렇게 항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일 거라는걸 남자 장관이 어떻게 알죠? 앞에서 ‘성차별 나쁘죠’ 한마디 하고 말겠죠. 여성이 그 자리에 있어야 숨겨왔던 차별이 드러나고, 그제야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운동이 시작되는 건데요.

경향성도 있어요. 유리천장을 뚫고 그 분야 최초로 고위간부에 오르거나 최고직에 오르는 여성들은 대부분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어요. 출세욕 강한 명예 남성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 타입들이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노력하다가 어쩌다 한 명 뚫고 최고직에 올라가요.

영국 최초의 여성 정부 수반인 마거릿 대처도 페미니즘적 인물이 아니었고, 여성 CEO가 드물었던 당시에 다국적 기업 HP CEO 자리에 올라서 여성 CEO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칼리 피오리나가 그 예죠. 대부분 국가에서 최초로 정부 수반 자리에 오른 여성들을 봐도 페미니즘과 거리가 있는 보수 정권 출신이 대부분이에요. 대한민국의 박근혜 역시 그 경향성 안에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여성중 의전서열이 가장 높은 추미애 씨도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죠.

이를 두고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인권 신장해놓으면,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명예 남성들이 열매 따 먹는다 분통을 터트리는 때도 있지만, 최초의 열매를 누가 따먹는지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죠.

어쨌든 최고위직에 올라간 여성들은 여자 홀로 남자들 사이에서 버티는 건 힘들다는 걸 알고 다른 여성을 끌어주거나, 그 최고위직 여성을 보고 용기와 희망을 받은 수많은 여성이 더 많이 도전하면서 다양성을 확보해나가요. 숫자가 많아져야 차별에 목소리도 나오는 거지, 혼자서는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죠. 그 존재 자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여성의 성공은 다른 여성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됩니다. 오바마와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 경선을 펼쳤을 때, 흑인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오바마를 지지해도 비난받지 않았지만,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힐러리를 지지하면 생물학적 어쩌고 별 이유로 비웃음을 당하고 공격당했죠. 오바마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기 때문에, 대다수 흑인의 가난한 삶에 공감하지 못하고 차라리 빈민가에서 자란 빌 클린턴이 가난한 흑인들의 현실을 더 잘 알 거라는 분석이 있었죠. 그 말을 흑인들이 귓등으로라도 들었나요.

오바마를 당선시켰고, 미국 흑인들에게 있어서 오바마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는 다들 알지 않나요. 늘 소외당하는 흑인이기에 성공할 수 없다는 열패감이 있었는데, TV를 켜면 흑인 대통령이 나와요. 나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이, 내 약점이라고 믿었던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이 성공한 모습이라니. 흑인들의 자의식과 세계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을까.

여성의 성공도 마찬가지라고 보거든요. 실패도 마찬가지고요.

박근혜는 철저하게 실패했죠. 근데 이것도 진보예요. 언제는 여성에게 실패할 기회나 주어졌나요. 과거에 여성이 뭘 시도해 볼 수는 있었어요? 수많은 남성 정부 수반이 실패해오다가, 여성 정부 수반 한 명이 실패했죠.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 정치인들은 박근혜의 당선을 두고, 선거전략과 당선에 득이 되었던 요인과 실이 되었던 요인을 수없이 분석했을 거에요. 정책별 지지율도 수없이 돌려봤을 것이고, 어떻게 하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부감이 드는걸 없앨 수 있는지 수없이 계산해봤을 거에요. 막연히 머릿속으로만 이럴 거다 저럴 거다가 아니라, 실제 사례가 생긴 거잖아요. 남자가 실패한 것보다야 여자가 실패한 게 다른 여자에게 도움이 되는 거죠. 여성 혐오가 심한 사회일수록 사람을 성별로 평가하기 때문에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기 쉬우므로, 데이터로 활용하기 좋죠.

여성이 실패하면 다른 여성에게도 부담이 된다고 하는데, 여성이 한 번 고위직에 올랐던 조직에서는 그 여성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다시 올라갈 확률이 높아요. 고위직에 한 번 올라가면 조직 분위기가 아무래도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성의 성공은 다른 여성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고, 여성의 실패는 반면교사가 되고 데이터가 됩니다.

5.

여성들은 더 많은 성공을 하고 더 많은 실패를 하고, 더 많은 업적을 세우고 더 많은 잘못을 저질러야 해요. 실패하지 말라고 하는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죠. 무언가를 시도하다보면 실패와 잘못은 생기기 마련인데.

페미니즘이 원하는 것도 여성이 실패할 자유가 아니었나요. 이제까지 여성들에게는 완벽할 의무만 있었죠. 실패할 자유 없이요. 늘 완벽한 외모, 실패 없는 일 처리, 고분고분한 말투, 모든 것을 예견해서 성폭력을 피할 수 있는 현명함, 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처세술 등등 수많은 조건을 요구받았죠. 그리고 그건 당연하기에 다른 보상을 받을 수도 없었어요.

온라인에서 아이유를 지독하게 비난하는 여성들이 불편한 점도 이 때문이기도 해요. 여성 혐오적 시각이 있기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실패도 하지 않고 잘못도 하지 않겠죠.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다른 여성들의 잘못과 실패를 지적할 수 있고요.

과연 그들이 아이유가 여자 아이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처럼, 다른 여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을까? 다른 여성이 나보다 잘나가는 것에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한 적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다른 여자들이 내 앞길 가로막는다, 내 여권 하락시킨다. 다른 여자들 탓만 하고 있지는 않을는지.

저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의 성공에서 용기를 얻고, 다른 여성의 실패에서 반면교사의 경험을 얻으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을 꿈꿔요. 다른 여성의 실패를 정죄하지 말고 자신의 성공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아이유를 둘러싼 과도한 비난 역시 페미니즘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2018/04/26)



요즘 정치적 올바름(다문화 수용, 성차별 금지) 경향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나요

루이보스티

1일 전

원래 ask 오늘의 질문은 그냥 넘기는데, 이 질문은 대답해야 할 것 같음. 1시간도 안 남은 질문이지만.

'정치적 올바름 경향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나요?'에서 지나침의 기준이 뭔지에 따라 답이 달라지겠지요. '(사회 발전을 가로막을 정도로)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하면 당연히 아니죠. 지금 기혼여성 경력단절 문제를 정치권에서 중요 의제로 다룰 정도로, 성차별이 수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수 많은 통계가 성차별이 어떻게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제가 굳이 또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면 '(내 기분을 불쾌하게 할 정도로)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읽었던거겠지요.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질문은 의미가 없어요. 인권의 문제는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분을 생각했다면 지금과 같은 인권의 발전도 없었어요. 노예제가 폐지 될 때 노예 주인들의 기분을 고려해야 했을까요? 신분제가 폐지될 때 귀족 양반층의 기분을 고려해서 신분제를 폐지하면 안 되었었나? 인권의 문제는 기분의 문제가 아니에요.

인권 뿐만 아니라 정책, 규칙 등등의 일관성 있는 목적이나 방향을 설정하는 문제에서 늘 기분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 효과와 의미가 문제지요. 어떤 방향으로, 어떤 목적으로 나아가야하는지를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왜 고민을 하겠어요. 기분 따라 움직이면 지배층이 원하는 대로 갈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거든요. 성차별의 문제를 기분에 따라 만들면 당연히 남성들이 원하는 대로 가겠죠. 기분이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효과와 영향력, 의미를 놓고 정해야죠.

가끔 성차별의 문제에서도 '이렇게 하면 여자들이 기분 나쁘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은 그냥 처세술의 일종이에요. 사회에 나가서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주다보면, 상대방은 '내가 그럼 틀렸다는 건가'하면서 거부감을 느낄 확률이 있거든요. 그래서 논리의 문제를 배려의 문제로 격하시켜 주는 거임. 기분 나쁘니까 배려해주세요 정도로 톤을 낮춰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거죠. 진짜 기분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요.

차별 받는 여성의 입장으로서 이 점을 명심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권리와 자유는 기분의 문제가 아님. 남자가 기분 나쁠지 말지에 따라 내 권리를 축소하거나 자유를 축소해서는 안됩니다. 기분 좋겠다는 이유만으로 성차별 철폐 외치는거 아니거든요. 내 권리가 남성의 기분에 따라 좌우되면 안되거든요. 기분의 문제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님.

상대방의 기분을 중요시해서 배려할 때는 친교의 관계일 때임. 상대방과 친해져서 관계를 이루고 싶을 때. 서로서로 합의가 가능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해줄 수 있겠죠. 그게 행복해지는 거기도 하고.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원칙을 정해야 할 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기분까지 고려해가면서 원칙을 정하려고 하면 인생이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얼마 전에 제 애스크에서도 끈질기게 한 명이 '내가 기분 나쁘니까 써방해라, 불쾌한데 니 자유가 뭐가 중요해'는 말을 비아냥과 조롱조로 장문으로 남긴 적이 있는데. 이 멍청이는 수단과 목적을 헷갈린거죠. 그 사람을 기분 좋게 할 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게 아니니까 내가 거기에 따라 줄 이유가 없음. 설득의 근거가 되지 못해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알았다면, 정중하게 요구했겠죠. 다른 근거를 대면서 정중하게 이야기하는게 맞았죠.

기분의 문제가 나와서 말인데 솔직히 저는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관리하는 애들도 어이없어요. 제 캐릭터 해석을 보고는 '니가 뭔데 그 사람을 다 아는척해'라면서 화내면서 '방탄 멤버들이 기분 나빠할거니까 올리지마'라고 주장함. 나는 내 캐릭터 해석을 내 주관적인 상상으로 받아들이는데, 본인들은 방탄 멤버들의 기분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남에게 강요하는 근거로까지 활용하려고 함. 기분의 문제로 나아가면 이렇게 논쟁이 유치해질 수 밖에 없는거죠.

권리와 자유의 문제에서 기분 따위 중요하지 않습니다.

(2018-04-22)

원문 링크: https://ask.fm/Amanda_Kim01/answers/147861529265



CLC 장예은


기혼여성을 비난하는 플로우에 대해 말이 나오네. 근데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결혼은 합리적인 선택이야. 페미니즘의 핵심은 여성의 재생산권을 여성에게 돌려주는 것임. 여성이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남성과 다른 지위를 갖게 되고 여러 차별이 파생되거든. 낙태권이 그래서 중요하고.

여성의 낙태권도 존중되어야 하지만, 출산할 권리도 존중되는게 맞아. 낳고 싶으면 자유롭게 낳고, 낳기 싫으면 자유롭게 낙태하고. 그렇기에 낙태권과 출산휴가 보장 등의 모성 이슈가 동시에 논의되고 추진되는거지. 여성이 출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결혼하는게 합리적인 선택임. 현재까지는.

지금 통계를 찾기 힘든 상황인데, 한국 여권 순위가 엄청나게 높게 나온 통계가 하나 있었거든. 왜 그런 통계가 나왔냐면 '결혼제도 안에서 출산한 여성 비율'이 기준 중에 하나였어. 물론 이 순위가 설득력 있는 순위라는데는 동의 하지 않고, 비판할 점도 많지만.

전세계적으로 봐도 결혼제도 안에서 출산을 하는게 여성에게는 더 안전하단 말이야. 그래야 배우자가 아이의 양육에 책임질 확률이 훨씬 더 높아. 동거하면서 출산하거나, 원나잇으로 임신하는 것보다는. 결혼 제도 안에서 출산하고 싶어하는게 당연한거고, 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현실도 좋은거임. '모든 한국 여성이 단결하여 결혼하지 말고 남성을 보이콧해야 여권이 신장된다'는 허황된 믿음 때문에 기혼여성을 공격하는데. 여권 신장 방법은 다양하게 있고요, 오히려 지금 기혼여성을 공격하는게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렏펨 중에서 '비연애, 비출산' 강요하는 분들은 사람이 동물적인 존재라는걸 잊어버린거 같기도 해. 이성적으로 성평등에 방해가 되니까, 연애와 출산을 다 포기해야지 하고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겠냐. 인류가 번식본능을 쉽게 포기할 수 있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종했을것.

(2018-04-15)

원문 링크: https://twitter.com/GirllyDailySeal/status/985360308414832640



방탄은 페미에 대한 생각 진짜 하나도 없는데 ㅋㅋ 굳이 님들이 그렇게 악 써가며 해야될까요?걔넨 해체뒤에도 페미발전 없을것

루이보스티

4분 전

참고) 이 질문은, 지민의 아줌마 발언으로 논란이 시작된 다음 날, 제가 존잘님들 떠나서 슬프다는 트윗을 할 때 왔던 질문입니다.

질문자님의 메시지는 분석하면 세 가지네요. 여혐지적 과정과 결과의 효용성과 감정과잉, 합리성에 관해 각각의 항목으로 나누어서 대답하겠습니다.

1.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적 언행을 지적 하는 효용이 있는가?

있지요 당연히. 방탄소년단도 싸이퍼3의 가사를 바꿔 부르지 않았나요. 이제는 <호르몬 전쟁>도 안 부르고 있고. 항의하니까 동아일보에서 기사화해서 소속사 공식 피드백도 있었고요. 페미니즘적 행보를 보이지 않는거지만, 아예 무시하고 있지는 않을겁니다.

다만 저질러놓은 여성혐오에 비해서 택도 없는 피드백을 한다는게 문제지, 아예 효과가 없는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악쓰면서 피드백 요구를 하니까 그나마 <호르몬 전쟁2> 가사가 나오지 않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방탄소년단 뿐만 아니라 아이돌 문화 전반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여성혐오적 뮤직비디오 수정이나 가사수정도 이루어지고 있고, 여성혐오 언행을 하지 않도록 배우겠다는 아이돌의 말도 있었고요. 가사에서 성별지칭어를 쓰지 않는 흐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다 트위터에서 '방탄소년단 = 여혐돌'로 까이면서, 아이돌판에서 여성혐오적 언행을 하면 안된다는 경각심을 준게 아니겠습니까. 물론 저렇게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를 비판한 사람은 방탄소년단 팬 뿐만 아니라 타 팬덤, 트페미 등등 여러 집단이 뭉친 결과입니다.

아이돌판 사람들도 다 거기서 거기라서 아이돌의 여성혐오에 미친 경각심까지 하면 꽤 효과는 있지 않을까 해요.

2. 방탄의 여혐지적을 할 때 지나치게 감정과잉인거 아닌가?

아이돌 산업이 유사연애 산업이라서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은 분노를 느낄 수 있지요. 어쩌면 순덕(순종적인 덕후)보다 더 할 수 있습니다. 순덕은 자신의 여러 정체성 중에서 '아미'라는 정체성을 1위로 놓아서 마음 속으로는 별 갈등이 없거든요. 그냥 여혐지적을 하는 사람을 마음 편히 공격할 뿐.

여혐지적을 하는 팬들은 페미니스트,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아미라는 정체성을 동등하게 놓기에 충돌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적 갈등이 있으니까요. 자신의 취향이 자신이 지지하는 사상과 다르다는, 내가 아직 완전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고요.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 피드백 요구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보니 분노가 쌓인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계속 피드백 요청을 해와도 무시한다는 분노요. 이제는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고객으로서 무시당한다는 분노도 꽤 많이 섞여 있을거에요.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보통 많이 무시당하죠. 일터에서도 장비는 주로 남성에게 맞춰져 있고, 장애인 복지도 남성 장애인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성이 주요 고객인 아이돌판에서마저 여성을 부정하는 여성혐오가 벌어진다는 점도 분노할만한 지점이고요.

트위터 흐름에 따라서 분노가 더 커지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이번에 지민의 아줌마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근데 시간이 갈수록 순덕들이 억지 논리를 펼치면서, 여혐지적하는 사람을 공격하는걸 보니 분노가 더 커지더랍니다. 저렇게 억지 논리를 펼치다가 내면화하면 어쩔건데요. 간미연 공격했던 문희준 팬들 보세요. 아직도 간미연 공격했던거 반성 안함. 자기가 과거에 했던 언행을 비판적으로 반성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렇게 억지로 남들 공격을 안 합니다.

방탄소년단 여성혐오의 영향력을 가장 크게 느끼게 해주는건 아이러니하게도 순덕들입니다. 순덕들이 방탄의 여성혐오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내면화하는 모습을 보는건. 힘들어요.

3. 방탄의 여혐지적하지 말고 편하게 사는 게 더 낫지 않나?

이번 공식카페 강등사건을 보고 저도 기대를 많이 내려놓았습니다. 사실상 공식적으로 여성혐오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으니까요. 여혐 지적에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쏟을 여력이 별로 없네요.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 방탄소년단의 여혐에 입장을 분명히 하고, 그들의 여혐을 인지하고, 여성혐오를 옹호하지 않는 선까지가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합리적인 것과 정당한건 다릅니다만. 합리적인 것도 필요하지요.

이제는 방탄소년단이 탑을 찍으면서 방탄소년단의 올팬 기조도 많이 줄어들었으니, 여혐지적을 하는 팬들을 공격하는 분위기가 덜해질거라는 기대도 있고요.

(2018-03-28)

원문 링크: https://ask.fm/Amanda_Kim01/answers/14730010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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