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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제 팔로워 7만 4천명 거느린 네임드 아미(이하 J씨)에게 무려 캡처 박제로 저격 당했거든. 저격당하면서 생각한 걸 간단하게 써볼게.

J씨의 팔로워는 7만4천명, 내 팔로워는 360명 정도. 일단 숫자 싸움에서 비교가 안 됨. J씨는 방탄의 모든걸 좋게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순덕(순종적인 덕후) 포지션이고, 나는 방탄 멤버들의 장단점 분석하는 까빠의 포지션. 팬덤 사이에서는 당연히 순덕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일단 팬덤 내 파워에서는 내가 많이 불리함.

캡처 박제라는건, 내 트윗을 캡처해서 J씨가 뿌렸다는거거든. 캡처해서 뿌려버리면, 내 글이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게 되는거지. 저작권도 링크만 달게 하잖아. 원문 복사해가지 못하게 하고. 원글 저자의 통제권을 존중해야하니까. 그래서 이게 질이 낮은 방법임.

내 트윗이 불만이면 나에게 이야기를 하면 될텐데, J씨는 자신의 팔로워에게 '까빠다, 까빠가 있다'면서 선동해서 나를 공격하려고 했던거지요. 몰아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거임.

J씨가 문제 삼은 내용은 내가 웃기고 싶어서 사캐즘(sarcasm)이라고 썼던 트윗 하나랑, 열애설이 난 멤버에게 팬들 좀 달래보라는 내용임. 내 빈정거리는 유머가 불쾌했을 수 있다는거 이해함. 근데 팬들 달래보라는 트윗에 그렇게 반응을 한건, 글쎄. J씨는 팬을 사랑하고, 팬도 오빠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세계관이 있는데, 내 트윗은 '오빠도 아이돌짓 하기 싫을 수 있고, 팬들이 의심한다'는 전제로 쓰인거라 화가 났었나 봄. 이건 J씨의 어이없는 분노고.

J씨는 이미 꽤 오래전에 나를 트위터에서 블락한 상태였어. 블락이 뭐냐하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말걸지 못하고, 자신의 글을 보지 못하게 하는거. 원래 나는 J씨에게 말 걸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언팔한 상태였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J씨는 내 트윗들을 다 지켜보고 있었더라고. 게다가 J씨는 내 트윗을 구독한 사람들까지 블락해버림. 나와 내 트윗 구독자들을 한데 묶어서 공격하고 싶었던거지. 그리고 J씨가 폭발한 계기는 내가 방탄소년단의 유명한 영상회 행사를 다녀왔던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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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약간 이해가 안 되는게 있었거든. J씨가 문제 삼은 트윗은 리트윗이 2, 3번 밖에 되지 않은 트윗이야. 그래서 탐라 사람들이 스쳐가면서 본것까지 다 합쳐도 1200번 정도 밖에 노출된적이 없음. 근데 J씨가 탐라에 내 트윗을 캡처해서 나를 저격했단 말이야. 그 트윗은 리트윗이 48번 이상 됐어. J씨의 팔로워 수까지 생각하면 아마도 10만번은 노출이 되었을걸.

J씨가 내 트윗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랬다는게 이해가 안 되지않아? 그냥 1000번 정도 노출되고, 반응하며 읽은 사람은 10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트윗을 수만명에게 노출시켰다는게.

스트라이샌드 효과라는게 있어. '어떤 정보를 감추려 하거나 삭제하려다가 오히려 그 정보가 비의도적으로 더 공공연히 확산되는 현상'을 말하거든. 내 트윗을 문제시 해놓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퍼트린거.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니? 내 트윗을 퍼트리지 않고 해결해야 하지 않았을까?

근데 이런 의문은 정덕질하다가 아이돌판에 온 내 생각이더라고. 정덕판에서는 여론조작을 할 때 마음에 안 드는 의견이 있으면 밀어버려. 새로운 다른 게시글을 올린다든지 해서. 최대한 불리한 글들은 노출되지 않도록 묵살시키고, 글쓴이는 공지를 어겼다고 지적하든지 다른 방식으로 괴롭혀서 쫓아내지.

근데 아이돌판은 그게 아니란 말이야. 정덕판이랑 다르게 '표심에 영향을 주는 트윗인가, 아닌가'가 중요하지 않음. 그냥 '이 트윗을 쓴 팬이 진짜 오빠를 사랑하는가, 아닌가'인 진정성을 판별하는거야. 그니까 트윗 내용이 주는 영향력이 아니라 글쓴이에 대한 공격인거.

정덕판에서는 사람들 가능하면 안 내치거든.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 1인 1표라서 어떤 사람이든지 다 중요함. 오히려 강박증, 편집증, 가벼운 조현병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하기도 함. 이런 사람들은 음모론을 잘 믿고, 음모론에 빠져놓으면 사람들 조종해서 공짜로 댓글 알바로 부려먹을 수도 있고, 다른 정당안 찍고 그래서. 이상한 놈이든 아니든 무조건 표셔틀로 쓸 수 있으니까 다 불러 모아.

A정치인을 까면서 지지하든, 순종적으로 지지하든 일단 A에게 표를 찍어준다고 하면 그냥 냅둬. A후보를 까놓고 A후보 지지유세장에 왔다고 A후보 지지자들이 그 사람 욕하지 않는단말이야. '저렇게 비판하면서 지지하는 놈은 쫓아내야합니다' 이러지 않아.

근데 아이돌판은 그게 아님. 아이돌판은 무한 투표 시스템이 있어. 1인 1표가 아니라 코어가 강력하면, 그 팬들이 며칠간 밤샘 노동을 해가면서 엄청난 득표수를 만들어 줄 수 있음. (참고: [아이돌 팬덤] 덕생을 갉아먹는 무한 투표 시스템)이런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돌판에서 '오빠는 훌륭한 사람이다, 오빠를 위해서는 희생해야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음. 그러니까 나같은 까빠는 1표를 가진 유권자가 아니라, 분위기를 저해시켜서 수백표를 떨어뜨릴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인거지.

J씨는 내가 까빠질하면서 트윗 쓰는걸 지켜보다가, 내가 영상회에 갔던걸 계기로 폭발했잖아. J씨는 '웬 인간 하나가 방탄에 관심이 있는지 불쾌한 트윗하고 있다' 정도로 생각하다가, 내가 영상회에 가니까 '저런 까빠가 우리 팬덤에 들어온다고?' 이러면서 화를 냈던거지. 팬덤 속에 나 같은 까빠가 들어오는걸 용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거.

어차피 내 트윗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트윗 내용은 중요하지 않아. 그런 노동을 할 사람은 내 트윗 내용에 흔들리지 않으니까. 1표를 가진 유권자 중에는 흔들릴 사람이 많겠지만. 그래서 이런 특수성이 있구나 했어.

보통선거, 평등선거 만만세라는 결론이 나온다는거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아이돌판처럼 많은 표를 가진 사람들만 대접 받는거고, 적은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공격 받는거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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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트윗 내용에 반응하는 J씨의 불쾌함도 특이했어. 사실 J씨가 내 트윗을 캡박해놓은걸 보니까 순정을 바치는 아이돌팬이 보기에 내 트윗이 꽤 불쾌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그제서야 했거든.

근데 나는 야구 덕질도 했거든? 야구판에서는 저 정도 이야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서. 흔하게 우스개 소리로 나오는 이야기임. 디씨 갤러리 뿐만 아니라 엠팍처럼 점잖다는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흔해. 야구경기에 지면 선수들보고 '버스타고 오지 말고 광주에서 서울까지 걸어오라' 이런 식으로 화내기도 하고.

내가 성격이 원래 삐딱하고 시니컬하기도 하지만, 내가 있었던 판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었어. 근데 아이돌판에서는 이렇게 크게 문제가 되는거.

왜 이럴까, 생각을 해보니까 야구판은 성적이 중요하고 아이돌판은 인기가 중요한거더라. 야구팬들이 야구선수를 아무리 까봤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성적만 좋으면 그 선수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어. 연봉 협상 때 팬들이 하는 이야기가 '어차피 모기업에서 돈 받는거니까 돈 많이 받아라' 이런 이야기거든. 팬들이 좋아하든 말든 성적 좋으면 모기업에서 돈 많이 받음.

근데 아이돌판은 그게 아니란 말이야. 아이돌은 인기에 의해서 좌우되는데, 여론형성이 꽤 중요함. 팬들이 나름대로 영업을 하고, 좋은 여론을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것도 그 이유임. 팬들이 아이돌을 미친듯이 까기 시작하면 팬들 분위기 어수선해지고, 팬들도 안 모이고, 인기 없어서 망하게 되어 있음.

딱 떨어지는 성적이 아니라 불안한 인기에 의해서 좌우되는 아이돌인지라. 팬들도 인기에 민감할 수 밖에 없고, 그 커리어에 목숨을 걸 수 밖에 없지. 야구선수는 범죄 안 저지르고 야구만 잘하면 되니까.

고용안정과 연봉 예측이 가능한 야구선수와, 지나치게 치열한 레드오션인 아이돌 시장과 불안정한 여론에 의지해야 하는 아이돌들. 이걸 보면 아이돌팬들이 왜 그렇게 작은 비아냥에도 화를 내는지 알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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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보통선거, 평등선거와 고용안정은 매우 중요하다.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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