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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트위터에서 방탄소년단의 여혐 모음 타래를 보고 탈방하고 싶어졌다. 여혐이 주된 이유는 아니고,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쯤 된다. 여전히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여성을 비난할 수는 없으며, 방탄소년단의 여혐으로 팬들이 이득을 본 것이 없기 때문에 팬이 방탄소년단의 여혐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방탄소년단 덕질이 정말 좋기만 해서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방탄이 해외투어를 다니면서 양질의 떡밥이 쏟아지고 있는데, 굳이 찾아보고 싶지가 않더라. 홈마들이 해외투어 다닌다는 이야기나, 사생이 방탄과 같은 일등석에 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돈과 시간이 있으면 나는 방탄 덕질 안 하고 여행 다닌다'는 생각이 들더라. 실제로 이번 콘서트 갈 비용을 보태서 2주간 미국 여행도 다녀왔고. 사인회 참가비용과 비슷하거나 낮은 비용으로 다녀온 건데 매우 만족했거든.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되었을 때 할 것 목록에 과연 방탄소년단 덕질이 있을까? 생각해보니까 아니더라고. 내가 부자 백수였어도 방탄소년단 덕질을 했을까? 질문하니까 아님. 내 최애 김남준의 80% 정도만 되는 남자친구가 있었어도 방탄소년단 덕질을 했을까? 물어보니까 또 그건 아님.

나는 완벽한 조건에 있다면 아이돌 덕질을 안 했음. 그러니까 나한테 아이돌 덕질은 가성비, 노성비 취미임. 가격 대비 성과가 좋고 노력대비 성과가 좋은 취미.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즐거움을 주고, 큰 노력을 투자하지 않아도 즐거움을 준다. 하다못해 요가를 하려고 해도 시간 맞춰서 이동하고, 옷을 챙겨다니고 귀찮음에 저항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근데 아이돌 덕질은 그냥 집에 누워서, 버스 안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켜서 보면 그만이다. 너무 편해.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 만나서 이야기하기도 좋다.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아이돌 팬들이 많으니까,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이야기하기도 좋음. 실제 나는 방탄 덕질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닿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식 팬클럽 가입해보는 경험도 해보고.

반면에 거슬리는 점도 많고. 이렇게 접근성이 낮은 취미다 보니까 아무나 다 할 수 있다. 나처럼 허영심 많은 사람에게는 이 점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지 않음. 최근 내 포스팅에 백 개 넘는 댓글이 달렸지만 별로 읽을만한 댓글은 없었잖아. 그러면 현실 자각 시간 온다고. 나한테 붙는 사람은 이런 건가 하면서 말이지. 복잡한 아이돌 문화에서 만들어진 규칙을 이해할 수 없어서 생기는 갈등도 문제고. 아이돌의 행동 하나하나에 감정이 확확 바뀌는 모습에 자괴감도 든다. 내 머리 색깔보다 방탄 멤버들 머리 색깔 생각을 더 많이 한 거 실화임. 연예인이 뭐라고 이런 생각이 시시때때로 생김.

나는 방탄의 성공 서사에 반해서 입덕한 케이스임. 국뽕 입덕러. 그래서 그 서사에서 각 멤버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서 캐릭터를 주로 팠었고. 음악에 큰 감흥을 못 느끼는 편임. 차라리 시에 감흥을 느꼈으면 느꼈지. 내가 제일 감동한 노래는 이집트 왕자 OST인 'When you believe'이고 가장 많이 집중해서 들은 앨범은 애니메이션 SPIRIT OST임. 음악 그 자체보다는 음악에 담긴 서사를 더 좋아함. 아니면 차라리 화려한 퍼포먼스의 배경음악이 되던가. 아니면 방 청소할 때 배경음악으로 틀어놓는 음악이라거나. 음악 그 자체만으로 감동하여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음.

근데 방탄은 인터뷰에서 늘 '더 좋은 음악 들려드리겠다' 한단 말이지. '음악의 힘을 믿는다'고 한 멤버도 있었고. 거기에 공감이 안 가.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면 어떻게 음악적으로 발전하는지 지켜볼 수라도 있겠는데, 나는 음악에 문외한이란 말이야. 아이돌로서의 성장은 마무리가 되고 이제는 아티스트 노선을 타면서 음악에 집중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문외한인 영역임. 서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재미가 없는 영역. 그래서 국뽕빨이 떨어졌나봐.

나한테 재미있는 떡밥이 떨어질 것 같지도 않은 데다가 진짜로 좋아서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취미를 그만두는 건 당연한 거겠지. 내 삶에 활력을 주고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까지 가성비로 채우는 건 싫어서. 내가 진짜 원해서 즐거운 취미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음. 여초커뮤를 그만둘 때처럼 내 인생에 기쁨을 주고 활력이 되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찾고 싶더라고.

말은 이렇게 해도 다시 방탄 좋아한다고 재입덕할 수도 있고. 그래도 이런 내 시도가 헛되지 않다고 생각함. 힘든 거 참아가면서 덕질하고 할 말 꾹꾹 눌러가면서 덕질한게 아니라서 별로 한은 남지 않았다. 그만 좋아해도 아마 트위터 트친들이 방탄덕질을 대부분하고 있을 것이고 방탄 콘텐츠 보다가 블로그 글은 또 올라올 수 있음.

나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사람도 그렇고 자기가 정말 좋아서 하는 취미를 찾았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거 말고. 아이돌 덕질이든 운동이든 독서든 여행이든 로또 1등 당첨되어도 하고 싶은 취미들. 그게 무리면 비스무리한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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