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오늘 스님과 통화를 했다. 쓰기 명상을 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스님께 말씀드리고 싶었다. 스님은 나의 변화에 기뻐하셨고, 나 역시도 기뻤다. 나는 트위터를 끊을 수 없다고 늘 스님께 하소연하고는 했다. 트위터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고 관심이 필요한 의제들이 오가기 때문에, 트위터를 끊고 공부에만 집중하는 선택을 하면 죄책감이 든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쓰기 명상을 하면서 그와 관련된 생각을 했는데, 예전에 지하철에서 남루한 행색의 잡상인을 본 적이 있다. 장사하는 법도 몰라서 가만히 앉아 있던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말투로 행상을 했다. 그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동정심이기도 했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의 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전화를 받자마자 그의 얼굴에서 밝은 웃음이 피어나왔다. 그러자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세상 누구에게나 소중한 사람이 있고 웃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타인을 동정할 필요도 없고 불필요하게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러니 나는 내 짐만 들고 가면 되는 것이다.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사회와 타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다가 부조리함에 빠져버리는 사람이 많더라. 그렇다면 세상의 부조리함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선하고 행복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자기가 행복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남을 도울 수 있을 것 같고. 결국 세상을 구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응원하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지금의 내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 말을 듣고 스님이 그걸 이제 알았냐는 듯이 빵 터져서 웃더라고. 내가 힘이 생겨서 행복해지고 자비를 베풀면 주변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테니 그때 도우면 된다고.

이런 내용의 통화들을 했고 마음이 아주 홀가분해졌다. 불필요한 죄책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지금은 그동안 힘들었던 나에게 세상이 그냥 공부만 하며 부모의 그늘에서 편안히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라고 준 기회일지도 모른다.

내가 있었던 학교에서 내 어릴 적 모습과 똑같은 학생이 있었다.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티셔츠에 그림 그리는 시간을 마련해주면,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그리다가 자신의 기대만큼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며 우는 아이였다. 잘 그렸다고 그냥 재미있게 그리면 된다고 이야기를 해도 통하지 않았다.

통화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으니 그 학생의 모습이 떠오르더라. 이제 더 부모님은 나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그저 내가 평온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하며 후원해주고 있는데, 나는 고난 극복 영웅 서사를 쓰고 싶어 한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혼자 가상의 사명감에 부담감을 느끼고 짓눌려 버둥거렸던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능력도 없다. 내 블로그 댓글 관리조차 부담스러워하는데, 세상과 맞서 싸울 정신력이 될 리가 없잖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나보다 더 잘 준비된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는 행복하게 살면서 주변에 다정하게 대하고 분리수거를 잘하고 쇠고기를 줄이고 후원하는 등의 생활 속의 실천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은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도록 세상이 짜여 있다는 뜻이니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늘 나는 내가 가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는 했다. 나는 그냥 스테인리스 수저인 서민층일 뿐인데도 나보다 가난한 사람을 보거나 나보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정작 재산이 1,000억 넘는 부자는 자신의 부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이제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행복하게 누리려고 한다. 대단한 결과를 내놓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좋은 결과를 내놓지 못해도 내가 받은 지원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이니까.

다른 사람을 대하거나 도울 때도 죄책감이 아닌 감사함과 행복으로 대하고 돕고 싶다.

홀가분하게 내 할 일에 충실하면서 즐겁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