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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을 읽다 말고 쓰는 글. 무슨 내용이 나오냐면 '이집트에 갔는데 이집트 어부에게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 시장에 판매해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했는데, 이집트 어부는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하더라'면서 여유로운 삶의 모습으로 제시함.

이런 글만 거의 100개 읽은듯하다. 근데 이 책 저자 영국인이거든? 영국에 이렇게 여유 있게 사는 사람이 없을 것 같냐고. 엄청 많지. 근데 굳이 개도국의 사례를 들고 오는 마음. 근데 영국인이 저렇게 돈에 관심 없고 그냥 자기 먹을 정도만 벌면서 살면 '저러니까 노동계층이지 쯧쯧' 하면서 게으르다고 욕할걸. 국가보조금 빼먹는다고. 개발도상국 사람이 그러니까 여유롭고 풍족한 삶으로 보인다는 게 너무 웃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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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내 버튼을 누른 이유는 계층 상승의 문이 닫히고 있는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저렇게 돈 욕심 없이 그냥 먹고 살 만큼만 벌면서 사는 건 유럽같이 복지제도가 잘 된 나라가 더 좋음. 보조금 타먹기도 좋고, 아프면 의료보험이 있고, 나이 들면 연금보험이 있고. 유럽은 특히 안정적인 사회라서 계층이동이 쉬운 것도 아니잖아. 굳이 노력해도 얻을 소득도 없고, 노력 안 해도 잃을 것이 별로 없다고.

근데 개발도상국은 그게 아니거든. 사회안전망도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는 계층 상승도 쉬움. 현대 명예회장 정주영 씨 봐봐. 소 판 돈 들고 가출해서 쌀가게 배달일 하다가 한국 최고의 갑부가 되었잖아. 반면에 2018년 쌀 배달하는 청년이 대한민국 최고의 갑부가 될 확률이 과연 몇 퍼센트가 될까요?

계층이동은 사회가 불안정할 때 하기 쉬움. 허점이 많으니까. 그리고 국민들 교육수준이 낮으면 그때 공부해서 올라가 버리면 그만임. 과거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열쇠 몇 개 들고 오네 하면서 재벌가에 장가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한국이 애들 빡세게 공부시킨 거잖아. 공부 잘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니까. 반면에 계층이동이 막힌 지금은 애들 좀 놀리자는 분위기로 바뀌는 거고. 점점 한국도 안정된 사회로 가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저렇게 여유 있게 사는 대가로 잃는 기회비용은 선진국 국민보다 개도국 국민이 더 크다고. 어른 중에서 우리 부모는 왜 그때 강남에 집을 안 사뒀나 하는 사람이 많잖음. 이제는 강남에 집 사두기에는 너무 올랐고. 그렇게 개도국은 지금의 작은 차이도 나중에는 엄청나게 크게 벌어질 수 있으니까.

후손들을 위해서 돈 모아두고 계층 상승해야 할 거 생각하면 선진국 사람보다 개도국 사람이 더 부지런해야 함. 이러면 너무 유교적인 생각인가. 후대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2.

그리고 돈에 초연하다고 놀라워하는데, 돈 욕심도 아무나 갖냐고. 돈을 번 사람이 돈으로 이것저것 화려하고 호사스럽게 사는 걸 봐야 '아 나도 돈을 벌어야지'하지. 1980년대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 중에 누가 더 자본주의적이겠니. 당연히 경상도 사람이겠지요. 경상도에는 공장 짓고, 도로 건설하면서 사회기반 시설이 설립되고 돈이 돌고 돌았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저자가 만났다는 이집트 사람도 저개발지역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함.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일부 지역에만 자원을 몰아주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니까.

이게 왜 낭만적인 일인지 모르겠음. 적당히 일하고 살아도 사회안전망이 갖춰진 나라에서 하는거랑 사회안전망 없는 곳에서 하는 거랑 다른데.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서 하는 것도 다르고.

3.

이 논리가 위험한 이유는 '이집트인은 돈 욕심이 없고 자기가 만족할 만큼만 일하려고 하는데, 영국인은 늘 바쁘게 일한다'는 식의 논리로 빠져서 이집트인은 게으르다는 논리로 연결되고, 가난한 이유로 인종적인 이유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임. 늘 제 3세계국의 여유를 들먹이면서 '아 나는 늘 바쁘게 살지' 하면서 자신을 자책하지만, 과연 그 자책이 정말 자책일까? 바쁘게 일하는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하나도 없는 게 정말 맞을까? 그렇게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면 되지. 유럽에서 보조금 받을 궁리 하면서 게으르게 사는 사람 많은데. 낭만화시키면서 타자화하는 게 싫어.

한국인 중에서도 저렇게 개도국 사람들이 여유 있게 사는 걸 보면서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던데 글쎄. 나는 계층이동 사다리가 열려있을 때는 열심히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라.

(1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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