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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즈 Kei


1.
할 일은 하지 않고 온종일 사진만 정리했다. 정리가 아니라 클라우드 한 곳에 사진 파일들을 모으고 중복 사진들을 정리했다. 외장하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진이 스마트폰 여러 개에 분산된 것도 아닌데 온종일 걸렸다. 내가 요령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원래 오래 걸리는 일일 수도 있고.

온종일 사진만 보니까 사진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도대체 찍덕들은 어떻게 그 많은 사진을 다 찍고 보정하고 관리까지 하는 거지. 나는 사진 선택해서 인화하는 것도 벅찬데. 그리고 사진 많이 찍는 만큼 엽사도 찍힐 거 아니야. 그 사진들을 보고 보정을 하면서도 애정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사진을 보면서 내가 생각보다 즐겁게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사진에 찍힌 내가 안쓰럽기도 했다. 우울증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느라 머리빗질도 힘들어했던 내가 보이거든. 화장하게 되었을 때는 신나서 화장하는 바람에 화장이 부자연스럽게 진하고. 내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내 외모에 드러난다. 내가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최근 페미니즘의 탈코르셋 운동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완전한 탈코르셋을 하기에 주저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것저것 할 것도 하고 다닐 곳도 다니면서 살았더라. 나쁘지 않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

이제 사진 중에 골라서 인화하고 앨범에 넣으면 되는데, 울릉도와 독도 여행을 별개의 앨범으로 분리할지, 아니면 2019년 앨범에 포함할지 생각해봐야겠다.

우선 울릉도•독도 여행 사진들을 처리하고 나서 그 이전 연도들 사진도 하나씩 앨범으로 만들까 봐. 무인양품 앨범으로 만들든 아니면 인바이트엘 접착식 앨범으로 만들든 앨범으로 통일하고 싶다. 2015년까지는 매년 포토북으로 만들었는데 포토북보다 사진첩이 좋더라고. 내가 포토북을 만드는 재주가 없는지 포토북은 산만한 느낌이 든다. 사진처럼 한 장 한 장 분리가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서.

2.
나는 요즘 행복하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 내가 행복한 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심리적 진창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금은 행복하다. 그동안 사람들이 나를 왜 그렇게 대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나 자신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모르면서 눈가리개를 한 것처럼 깜깜하게 살았다.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도 몰랐고 그걸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구속복을 입은 채로 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야 타인 조망이 되어서 알 것 같고 살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은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나는 덜 힘들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지하에서 올라왔으니까. 2017년에 상담받기를 잘했고,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이 잘 맞고, 대학 시절에 교회를 다니면서 다정한 분위기를 알게 되었고, 부모의 지원이 있었고. 트위터에서 만난 인연도 내가 나아지는 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좀 더 나아지고 싶었던 나의 노력과 주변의 지지가 상승효과를 일으킨 것 같다. 물론 들인 돈과 시간이 어마어마하다. 남들은 더 효율적으로 치료 받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서 만족한다. 이 정도까지 오는데도 힘들었어.

우울증 치료는 거의 끝나가는데 ADHD 진단을 받았다. 그냥 그렇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ADHD 아동을 돌보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내가 어렸을 때랑 똑같았다. 보기 드물게 과잉행동이 적은 내성적인 ADHD 아동이었다. 그래서 내가 ADHD가 아닐까 의심했는데 맞았다. 내가 사는 게 왜 그렇게 힘들었었는지 알겠더라고. 치료 시기가 많이 늦은 편이다.

AHDH가 유전적인 요인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 엄마도 조금 의심스럽다. 그리고 내가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도 ADHD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식 낳는 것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ADHD 증상이 있어도 잘 사는 사람이 많다니까 나도 어떻게든 되겠지. 이만큼 성장했는데.  텀블벅에서 여성 ADHD 환자에 관한 책을 판매한다는데 사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취약한 점을 발견할 때마다 몸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몸이라도 건강해야지. 그래서 보험도 들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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