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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이슈가 된 이유식 데울 뜨거운 물 사건에 신경쓰여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건을 설명하면 이렇다.

팔로워 2000여명을 거느린 A 씨가 이유식을 데울 뜨거운 물을 요청했다가 아르바이트생에게 아동혐오를 당했다고 상호명을 밝혀 트위터에 게시.

사람들은 모두 그 가게와 아르바이트생을 비난함.

아르바이트생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트라우마가 생겼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음.

아르바이트생이 트위터에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서 트위터에 게시.

아르바이트생이 뜨거운 물을 무료로 제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가게 매뉴얼 때문이었고,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데울 수 있는 방안 등을 두 가지 제시했으나, A씨가 모두 거절.

그 가게와 같은 층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유아 휴게실이 존재했고, A 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강아지를 포함한 가족 넷이 함께 있고 싶어서 남편에게 물을 떠오라는 소리를 못하고 아르바이트생에게만 요구한 것.

A씨는 처음에 아르바이트생의 입장 표명을 일을 크게 키운다면서 비난하고, 정작 뜨거운 물을 무료로 제공하지 못하는 매뉴얼을 만든 사장을 옹호하는 트윗을 게시.

네이트 판에 가게 사장의 입장이 올라왔는데, A 씨의 주장과 달리 A 씨의 트윗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일을 그만 둔 것이 맞고 아르바이트생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함.

사람들이 A씨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계정을 비공개로 하였고 지금은 계정을 없앤 상태

어제부터 계속 이 사건만 집중해서 보고 있다. 트위터 끊었다고 블로그에 자랑했는데 이 사건을 접하고 나니까 너무 충격이라서 계속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에 버튼을 눌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A 씨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아르바이트생에 이입하면서 서비스직의 고충을 토로하는데, 나는 내가 A 씨처럼 잘못해놓고도 자기연민에 빠져서 저런 식으로 대응할까봐 겁남.

1.

며칠 전에 내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거든. 절에서 어떤 보살님이 다른 사람을 위로하면서 나를 섭섭하게 해도 좋은 사람일 수 있다, 나한테만 막 대하는 거고 다른 사람에게는 안 그러면 괜찮지 않냐고 말한 적이 있었음. 나는 나한테 잘해주면 좋은 사람이고 나한테 나쁘게 굴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거든. 나한테 잘해주지 않아도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고 성실하면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놀라웠어. 그리고 내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근데 이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란 말이지. 아르바이트생이 A 씨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사실임. 결과적으로.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은 사회적인 입장에서 보면 착실한 종업원이란 말이야. 매뉴얼을 지켰고, 매뉴얼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고객을 만족시키고자 대안들을 제시하고, 사건 이후에도 감정적인 반응 없이 흠 잡을 데 없는 대응을 하고 있음. 나중에 나타난 사장의 입장문에서도 아르바이트생을 올바르고 성실하다고 평가하는 표현이 나오고.

그런데 A 씨는 아르바이트생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나한테 잘해주면 좋은 사람, 나한테 못해주면 나쁜 사람이라는 단순한 기준에 맞춰서. 그리고 자신에게 못해줬다는 기준도 불공평했음. 같은 층에 있는 휴게실에서 물을 떠오지 않은 남편이나 매뉴얼을 만든 사장은 나에게 못해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음. ‘내가 원하는 대로 매뉴얼을 어기지 않았다 내 기분을 거슬렀다 나쁜 사람이다 아동혐오자다라는 의식의 흐름이 너무 웃겼음.

그리고 뜨거운 물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매뉴얼을 만든 사장이 자신에게 사과를 해서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니까 사장을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면서 불쌍하다고 동정함. ‘내 기분을 좋게 해주었으니 좋은 사람이다는 단순한 사고 방식.

이 사실을 깨닫고 충격 받았음.

2.

A 씨가 계정을 잠갔기 때문에 내가 쓴 이후로 A 씨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 없음. 그런데 A 씨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들이 다 이상함.

A 씨의 옹호자들은 매장의 방침을 먼저 설명하고 거절했어야 한다고 하는데(사실은 아르바이트생이 설명했고 A 씨도 인지하고 있었음) 보통 사람들은 매장에 뭔가를 요청했는데 거절 메시지가 돌아오면 이 가게의 방침인가보다하고 생각함. 그런데 A 씨의 옹호자들은 이 가게 종업원이 나를 혐오한다는 생각부터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더라고. 그 사고방식이 너무 괴로웠음. 종업원이 매뉴얼이라는 원리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종업원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거절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대.

자기 멋대로 거절해놓고 방침 핑계 대는 거다라는 주장도 나왔고, ‘매뉴얼 핑계대지 마라, 니가 혐오자라서 거절했잖아라는 주장도 A 씨 옹호자들 사이에서 나옴.

세상이 원리원칙과 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적인 감정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니까 융통성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감정에 따라 일처리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한테 좋은 감정을 가졌으면 매뉴얼을 어겨서 나를 기분 좋게 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니까 대우법을 적용하면 매뉴얼을 지키느라 나를 기분 좋게 해주지 않은 것은 나를 싫어해서 그런 것이다’라는 결론이 나옴. 여기서 발전해서 ‘나를 싫어할 정당한 이유가 없으니까 아마도 아동 혐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것임.

3.

A 씨와 A 씨의 옹호자들은 자칭 페미니스트거든. 근데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페미니스트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페미니스트는 사회의 성차별 구조를 혁파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지향해. 그러려면 일단 원리 원칙에 따라 사회가 움직인다는 것이 당연한 전제가 되어야 함. ‘사회는 원리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지금은 그 원리 원칙이 성차별이다 그 원리 원칙을 성평등으로 바꾸자 그러면 성평등한 사회가 이룩될 것이다라는 사고 구조임. 그런데 A 씨의 옹호자들은 사회가 원리 원칙이라는 체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믿잖아.

여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잘해주는 남성이 남녀 동일임금에 반대할 수 있음. 페미니스트들은 남자들이 여자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남자를 비판해야 해. 남녀 동일임금에 찬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여자의 기분을 좋게 하는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런데 A 씨의 옹호자들이 과연 이걸 이해할까? A 씨가 자신이 거절당한 것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식당의 체계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면 그 아르바이트생을 비난하지 않고 사장에게 당당하게 매뉴얼 수정을 요구했을 것임. 그러나 A 씨는 사장에게 만족스러운 사과를 받고 기분이 좋아지자 문제가 마무리 되었다고 믿었음.

문제를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바람에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여성의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엉뚱한 결과를 만든 것.

A 씨의 옹호자들이 성평등한 세상을 원하는건지 아니면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는 세상을 원하는 건지도 의문이었음. 성평등한 세상이라는 것은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뜻하는 것임. 내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사회를 뜻하는 것이 아님. 오히려 가부장제가 강했을 때 시어머니들은 자기 기분대로 사람을 휘두를 수 있었음. 이 경우에 '공정한 사회 시스템'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많은 사회를 원한다면 가부장제의 강화를 원하겠지. 정말 원하는 것이 성평등한 세상이 맞는걸까?

그리고 융통성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데, 그 융통성이라는 게 약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야 함. 공무원이 융통성 있게일처리를 한다고 하면 그 것은 비리를 뜻할 확률이 더 높음. 약자를 위한 배려라기보다. 고지식하게 성평등 주장하지 말고 세상에 융통성 있게살라는 말로 성차별을 정당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님. 뇌물이 오가고 비리가 오가는 것이 융통성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님.

소수자가 원리 원칙이 아닌 융통성을 강조해서 도대체 이득을 볼 것이 무엇이 있는지 의문임. 이번 사건에서도 융통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을의 입장인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갑의 입장인 손님이었음. 융통성 있는 사회는 갑에게 유리하다는 거 다들 알잖아?

4.

정말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면 사회가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서 움직인다고 믿어선 안 됨. 그리고 나한테 실수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지양해야 함. 융통성 운운하지 말고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원리 원칙대로 움직이는 사회가 옳다고 생각해야 함. 그렇지 않으면 이번 사건과 같이 페미니즘을 자기 기분에 따라 적용시켜서 애먼 사람 잡는 결과밖에 낳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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