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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모 작가가 트랜스젠더 인권이 여자 인권보다 높다고 말해서 며칠간 논란이 진행되었다. 이후 숙명여대에 트랜스젠더가 입학했다는 기사가 나왔고,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더 커졌다.

나는 도대체 여기에 에너지를 왜 쏟는지 모르겠다.

1.

트랜스젠더 인권이 여자 인권보다 높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더 약자다라고 주장하는 약자성 경쟁일 뿐이다. 누가 더 불쌍한지가 뭐가 중요해. 둘 다 불쌍한데.

이런 논란이 생긴 이유는 '가장 불쌍한 소수자를 우선 배려해야 한다'는 사고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그래서 가장 불쌍한 소수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임. 정말 트위터리안답고 한국 여자다운 생각임.

사회적 자원이 약한 사람들에게 우선 분배되어야 하는 것은 맞음. 그렇지만 당사자가 자신의 권익 향상을 위해 애쓸 자격이 최약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님. 돈 잘 버는 의사들도 의협을 만들어서 의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 노력함. 트랜스젠더보다 더 불쌍하든 덜 불쌍하든 많은 여성이 여성 혐오 때문에 고통받는 건 사실인데 도대체 트랜스젠더의 지위와 여성의 지위를 왜 비교함?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서 여성의 지위가 트랜스젠더의 지위보다 낮다는 걸 증명한다고 쳐도, 거기에 무슨 실익이 있음?

동물보다 인간이 중요한 건 널리 인정받는 명제임. 동물권 옹호자들도 사람과 동물 중에 누구를 먼저 살려야 하냐는 말에 '동물이 우선이다.'라고 공식적으로 이야기 못 함. 그래서 동물보호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불쌍한 사람도 많은데 겨우 동물 보호 운동하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음. 그렇지만 동물보호 단체는 '좆까' 하면서 계속 동물 보호 운동함. 그래서 동물 학대자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등의 성과도 얻고 있음. 사람보다 동물의 중요성이 덜하다고 해서 동물보호 운동이 의미 없게 되는 것이 아님. 어쨌든 사회에 필요한 운동임.

트랜스젠더 지위 향상 운동과 여성 지위 향상 운동도 마찬가지임. 둘 중에 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는 의미가 없음. 어쨌든 사회에 둘 다 필요한 운동이라는 건 확실하지 않음? 근데 왜 여기에 집착하는 걸까.

동물 보호 운동하는 사람은 동물에게서 운동을 이어나가는 동력을 얻는 것 같음. 근데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운동의 동력을 억울함에서 찾는 것 같음. 자기가 제일 불쌍한 약자라는 생각에서 오는 억울함에서 오는 동력. 근데 이러면 오래 못 감. 안 그래도 페미니즘 운동하면 스트레스 많이 받는데 트랜스젠더랑 싸우면서 스트레스를 더할 필요가 있음? 여성운동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함.

2.

법적인 성별 정정이 끝난 트랜스젠더가 숙명여대에 입학했대. 왜 여기에 분노하느라 에너지를 쏟는지 모르겠음. 법원이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허가 판결을 내렸을 때 끝난 사안이었음. 국가가 여자로 인증한 사람을 대학이 거부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음?

트위터에서는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으로 성염색체 문제가 나오기 시작함. 딱히 성염색체에 전문적 지식이 있지도 않으면서 말을 하느라 논의가 산으로 감. 근데 대학 입학은 학벌과 학력의 문제임. 사회적 문제이지 의학적, 생물학적 문제가 아님. 도대체 성염색체가 여기서 왜 나옴?

사람들은 성차별할 때 그 사람의 성염색체를 따져가면서 하지 않음. 겉으로 보기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적당히 판별해서 차별할 뿐.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가슴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가 입대 영장을 받았는데 법원이 입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을 내렸음. 네이버 기사 댓글에서 남자들이 솔직하게 말하더라. 그 트랜스젠더 군대에 끌려갔으면 성폭행 당했을 거라고.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여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을 남자로 받아들이라는 억지스러운 판결을 할 수 없잖아. 사회적으로 여성인 사람의 성별정정 신청을 법원이 허가 할 수밖에 없음.

나는 삼성가의 딸 이부진의 삶과 내 삶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음. 그렇지만 이부진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산 분배, 기업 후계 문제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고, 가정 폭력 등의 여성 대상 폭력에 취약한 여성이라는 점은 사실임. 그래서 나는 이부진과도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함. 넓게 보면 이부진도 동일 임금 이슈와 여성안전 이슈에서 벗어나지 못함.

트랜스젠더도 마찬가지임. 트랜스젠더가 집안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음. 성범죄자들이 성염색체를 따지면서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음. 하리수의 예를 생각해 보더라도 성범죄자들은 여성으로 성별 전환을 끝낸 트랜스젠더를 특이한 여성으로 보고 성범죄의 대상으로 삼음. 그리고 트랜스젠더들도 임금 차별을 받을 확률이 높음. 이거면 충분하지 않나. 같은 여성 혐오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동일한데 왜 굳이 트랜스젠더는 여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트랜스젠더들의 여성 혐오를 지적하는데, 그 점은 트랜스젠더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함. 그렇지만 그게 트랜스젠더가 여자가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없음. 여성 혐오는 여자도 하기 때문에. 모두 각자의 여성 혐오를 반성해야 하지 트랜스젠더의 여성 혐오가 특별한 것이 아님.

3.

처음에 '우리는 성 소수자 운동까지 할 여력이 없으니, 여성운동을 최우선으로 두자'는 말은 '여성운동에 집중하자'는 뜻이었음. '성 소수자 차별 운동을 하자'는 뜻이 아니었음.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성 소수자 인권운동까지 할 수 없다는 뜻이었는데, 엉뚱하게 성 소수자 차별 운동을 하는 데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음. 성 소수자 차별을 인정한다고 해서 여성 차별이 부정되는 것이 아님. 페미니스트로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면서 왜 불필요하게 적을 늘리고 전선을 넓히는지 잘 이해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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