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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트랜스젠더 이슈에 신경 쓰지 말자고 했지만, 타임라인에 계속 트랜스젠더 이슈가 올라와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음. 그런데 계속 생산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혐오하는 트윗만 올라옴.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트윗만 올라와서 답답해하다가 정리해 봄.

1.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의 숙명여대 입학을 반대하는 사람은 도대체 트랜스젠더가 어떤 법적 지위를 얻기를 바라는 것임? 더 넓게 말하면 도대체 어떤 사회를 꿈꾸는 것임?

현행법이 성별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고 있고, 사회생활을 할 때 사람들은 성염색체가 아닌 겉모습을 보고 성별을 판단하여 행동하며 mtf 트랜스젠더는 사회적으로 여자로 취급 받으니까, 사회적 지위와 법적 지위의 불일치로 인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법원은 여자로 성별정정을 허가했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법적인 여자 지위를 갖게 된 이상 여성들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므로 시스젠더가 갖는 권리를 트랜스 젠더도 갖는 것이 맞음. 따라서 시스젠더 여성이 여대에 입학할 수 있으면 트랜스 젠더 여성도 여대에 입학할 수 있음.

이 논리가 트랜스젠더가 여대에 입학할 수 있게 된 논리적 배경인데, 내가 보기에는 잘못된 부분이 없음. 도대체 이 중에서 몇 번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임? 그리고 그 논리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도 말해야지.

숙명여대에 트랜스젠더가 입학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을 이걸 말하지 않음. 트랜스젠더는 여대에 입학할 권리가 없다고 하는데 그러면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가 다른 법적인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뜻임? 여성들의 법적 지위를 계층화하자는 뜻?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성염색체 검사를 해서 법적인 지위를 유전자에 따라 부여해야 한다는 뜻임? 아니면 지금의 여성, 남성의 양성체계를 무너뜨려서 여성, 남성, 트랜스젠더 3성 체계로 만들어서 각각 다른 권리를 부여하자는 뜻임?

저 논리 체계가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입학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잖아. 그러면 입학은 정당한거네. 단순한 부작용을 걱정하는 거고. 그러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해야지. 성범죄 예방 교육을 강화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트랜스젠더 입학이 가능했던 배경은 말하지 않고 우려되는 부작용만 되뇌어서 어쩌자는 것임?

2.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대학입학 전형이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도 한 가지 이유임. '내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라면서 희망 없이 살면서 스스로를 포기하고 반사회적인 인간이 되어서 범죄 저지르는 사람보다, '나도 열심히 공부하면 사회에 편입될 수 있어'라고 희망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더 안전하기 때문임.

이번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사건도 마찬가지임. 트랜스젠더의 평균 소득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음. 그러나 많은 트랜스젠더가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긍정하더라. 우스운 지점은, 트랜스젠더가 성매매 한다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도 반대한다는 점임. 성매매 찬성론자들의 주요한 근거가 '제대로 된 직장을 얻기 힘들어서 그렇다'는 것 아님? 그러면 트랜스젠더들에게 '나도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에 가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트랜스젠더를 응원해야 되는 것 아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보장해줄수록 성매매 하는 사람의 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음. 그런데 왜 반대하는지?

법이라는 전공을 택해서 성소수자들의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 트위터에서 혐오발언해가며 싸우는 방법이 아니라 제대로 권리에 대해 공부해보겠다는데 도대체 거기에 왜 반감을 갖는지 알 수가 없음. 트랜스젠더 법조인 숫자보다 시스젠더 여성 법조인 숫자가 더 많은데도, 트랜스젠더 법조인이 트랜스젠더에게만 유리하게 세상을 바꿔놓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그 입학생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거고요.

어떤 사람은 '언제부터 사람들이 법적, 의학적 근거를 따랐냐'고 빈정거리는데, 법적이고 의학적인 근거에 따라 판단하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임. 대원외고 나오고 서울법대 나온 사람만 가득해서 천편일률적인 구성이라는 비판을 받는 법조계도 좋아할 것임. 법조계가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로 구성될수록 더 많은 설득력과 정당성을 지니게 될테니까요.

여대를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임. 트랜스젠더가 여대에 입학했다는 것은 성 소수자의 지위가 시스젠더인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임. 그래서 당사자가 정치적인 이유로 인터뷰도 했고.

이런 정치적,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함. 이런 의미를 가진 사건을 막으려면 이것보다 더 큰 피해가 있음을 입증해야 함. 그런데 도대체 숙명여대에 트랜스젠더가 입학하면 어떤 피해가 있는지요. 막연한 불안감이잖아.

3.

'남자는 잠재적인 성범죄자'라는 말은 성범죄에 우호적인 환경이 되었을 때 누구나 성범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성범죄를 저지르기 힘든 환경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뜻임. 남성 스스로가 조심스럽게 행동하기를 촉구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저 말이 특정 남성 개인의 권익을 제한하는 근거로 쓰일 수 없음.

이번에 논란이 된 입학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미리 성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도 가정해서 입학할 권리를 빼앗을 수 없음. 성범죄가 걱정이 되면 미리 예방 교육 실시, 교칙 강화 등의 예방적 조처만 가능할 뿐임.

다른 분 트윗에서 '대학 내에서 성착취 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남교수, 남학장, 남이사인데 엉뚱한 사람 잡는다', '남교수 몰아내고 여교수로 채우자'는 말을 하셨는데 나는 그 말이 옳다고 봄. 성범죄에서 권력을 무시할 수 없음. 그 입학생은 정치적으로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숫자로도 소수자이고 신입생 신분임. 다른 학생에 비해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근거가 없음.

4.

인권은 파이 싸움이라고 주장하는데, 인권은 파이 싸움이 아님. 경제력 향상 운동에나 파이 싸움이라는 말이 어울리고요. 인권 향상에 필수적인 고문 금지는 누구의 파이를 늘려주는 것임? 축첩제 폐지, 호주제 폐지, 소라넷 폐지는 누구의 파이를 늘려줬음? 파이 싸움도 인권 운동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님.

트랜스젠더 여성이 입학하면 그만큼 시스젠더 여성이 입학할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사실임. 그렇지만 입학 반대하는 분들이 말했잖아.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는데 왜 숙명여대에 입학했냐'. 그 시스 여성도 마찬가지로 숙명여대 말고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을 것임.

트랜스젠더의 인구 비율은 전체 1%도 안 되는데, 이 인구가 여성의 교육권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여대생 대상 장학금을 확충하고 경찰대 여성입학 정원 증원 등등에 힘을 쏟는 것이 여성의 교육권을 높이는 것 아님?

6.

트랜스젠더가 여대에 입학한 사건은 정치적인 이슈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함. 힘들게 산 사람이 대학가서 공부하겠다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음. 현재의 법에 따라 입학하는 거니까 법체계를 흔드는 행동도 아님. 그리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음.

법적으로 입학생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거를 제시하거나 입증할 이유가 없음. 그 권리 행사를 막는 사람이 그 권리가 부당하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있음.

타인의 권리를 막으려면 중대하고 명백한 공익적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갖고 오지 못하고 있음. 앞으로 범죄가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성염색체 구성을 이야기하고, 학교의 건립이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반대하는 근거의 전부인데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기 힘든 근거들임.

입학생이 여대에 갈 수 있었던 법이 잘못된 것이라면 법을 어떻게 고쳐서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비전을 제시하거나, 이번 사건의 정치적·사회적 의의보다 사회적 손해가 크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함. 그렇지 않으면 정말 대책 없어 보임. 그런데 계속 말 같지 않은 주장들만 나오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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