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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 논란에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겠지만, 내가 트갈량인걸 어떻게 하냐.... 혼자 방구석에서 '이렇게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하면서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하면서 화내는 사람이 트갈량 아니냐.

나는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영향력이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응원하는 사람임. 그런데 계속 자폭을 하고 있는데 속이 상하지 않을 수 있나.

1.

지금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은 남자였기 때문에 성범죄 가능성이 높다', '트랜스젠더가 여대에 입학하는 것은 여성의 자리를 뺏는 것이다', '숙명여대생만이 말할 자격을 갖는다.'는 주장으로 여대 입학을 반대하고 있음.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반대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중요한 과제인 것처럼 말하고 있음.

숙명여대생만이 트랜스젠더 입학 여부에 말할 권리를 갖는다고 하는데, 숙명여대는 재학생의 등록금만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아님. 엄연히 국고 보조금을 받고 있는 학교이며, 대한민국에 속해있는 학교임. 언제부터 '재학생들이 입학생의 입학자격을 결정'했나요. 대학 입시 비리 때문에 정치권이 뒤집어진 것이 몇 번이었나요.

트랜스젠더 입학이 '여성 지도자 양성'이라는 학교의 방침과 어긋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이해하기 어려움. 한국 사회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음? 서구 명문대에서는 다양한 학생들을 입학시켜서 학생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잖아. 여성 장애인, 여성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등등의 다양한 여성들과 함께하는 경험이 어떻게 리더십에 득이 아닌 실이 될 수가 있지.

2.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에 찬성,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이냐 하는 문제가 아님.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문제임. 그런데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의 모습이 아님.

우선, 과거에 사관학교에서 '여자가 들어오면 훈련 강도가 약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걱정을 이유로 여성의 입학을 거부했던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 그러나 여자사관생도들이 입학한 뒤에 훈련 강도가 약해지는 일은 없었음. 실현될지 알 수 없는 걱정 때문에 법적 자격을 갖춘 사람의 입학을 제한하면 안 됨.

지금 논란이 되는 입학생은 법적으로 여자의 지위를 얻기 위한 절차를 충실히 밟았음. 반대자들은 입학생이 노력해서 얻어낸 법적 권리를 제한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주장의 근거가 한없이 빈약함.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기 어려움. 다른 사람의 권리를 그렇게 쉽게 제약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음.

법적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구성원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입학 자격을 취소하는 선례가 생기면, 그 선례가 여성에게 유리한 선례임?

면접관들이 솔직하게 말하잖아. '필기성적은 여성들이 더 우수한데, 현장에서 남성들과 근무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남성 지원자들을 더 뽑는다.'. 그런 식으로 기존의 구성원들이 새로 들어올 사람의 자격 유무를 다수결로 판단하게 하면 여성들에게 불리해짐. 지금의 대학과 기업들은 여자보다 남자와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싶어 하기 때문임.

입사 시험 성적을 조작해서 여자를 떨어뜨리고 남자를 합격시킨 회사에서도 '여자를 많이 들이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임. 그렇지만 그 이유들에 합리적인 근거는 없겠지. 결국 여자가 기댈 곳은 합리성이고, 법과 원칙임. 그런데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 반대자들은 그 합리성을 자꾸 훼손하려고 함.

사관학교에 여자생도들이 입학했다는 사실은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는 하나의 의의만 있는 것이 아님. '편견 없이 실력 있는 사관생도를 입학시킨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한국 군대 지도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를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의의도 있음. 이렇게 여성의 지위향상은 사회적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음.

군사정변으로 인한 정권교체와 시민혁명으로 이루어낸 정권교체는 다름.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그 이후의 사회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임. 성평등한 세상은 지배세력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단순히 교체되기만 한 사회가 아니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음. 왜냐하면 여성은 합리성에 근거해서 여성의 지위를 높여왔고, 여성의 지위향상과 합리성은 같이 가고 있기 때문임.

인권 침해 우려가 있는 전자 발찌 착용 법안 등의 경우 성범죄자 재범률 등의 자료에 근거해서 입안되었음. 막연한 공포를 이유로 입안된 것이 아님. 트랜스젠더 여학생이 시스젠더 여학생, 남교수, 학점교류 남학생 등 다른 학내 구성원보다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근거가 있어야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금지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음.

성별 정정도 마찬가지. 트랜스 젠더만 성별 정정을 하는 것이 아님. 출생신고 때 오류가 있는 사람도 성별 정정을 함. 그리고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이면 사회적으로 여자 취급을 받을 확률이 더 높은데 법으로는 남자라고 해버리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텐데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음. 자신의 주장이 정말 객관적으로도 옳은가, 사람들을 설득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으니 계속 무리수를 두게 됨.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을 허용하면,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주장하는 평범한 남자들도 여자 화장실이나 여자 목욕탕에 들어올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거기서 전선을 형성했어야 함. '태어났을 때 몸 그대로인 남성이 트랜스젠더임을 주장하면서 여탕에 들어오려고 했다'고 할 때 이슈화를 했으면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겠지.

페미니즘은 정치적 운동인데, 페미니즘을 하고 싶으면 정치적으로 움직이면 안되나 싶음. 지금 내가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는지,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지, 어디에 전선을 쳐서 의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지 생각해야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음. '트랜스젠더 = 여자의 파이를 뺏는다'는 생각으로 무조건반사로 반대하는 것 같음.

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음. 페미니즘에 들어가는 여자들의 정신건강, 시간, 에너지 모두 한정된 자원임. 그 한정된 자원을 왜 이기기 힘든, 이겨도 득볼 것이 별로 없는 곳에 투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움. 왜 억울함만 늘어가는 방향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몰아감. 이러면 장기적으로 불리해지는데.

트랜스젠더 입학에 찬성하는 여자들을 착한여자 콤플렉스로 몰아가는데,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찾아왔을 때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폭행하고 살인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국인들이 착했기 때문이 아님. 일본 정부가 없어도 한국인들은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보이기 위함이었음.

트랜스젠더의 여대입학을 금지한다고 트랜스젠더가 사라지지 않음. 트랜스젠더는 이후에도 계속 나타날 것임. 결국 트랜스젠더 인권사에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의 교육권을 공격한 사례로 이 사건은 남을 것임. 그리고 민우회 등에서 발표한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지지 성명문은 그에 반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임.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성별 정정 반대 서명 운동' 링크를 대형 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라는 자칭 페미니스트의 트윗을 봤음. 차별금지법은 사실 문제가 많은 법이라는 자칭 페미니스트의 트윗도 봤음. 기댈 곳이 대형 교회밖에 없겠지. 그런데 대형 교회들은 가부장제를 가장 수호하는 집단임.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에 반대하기 위해서 대형 교회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지경까지 갔으면 출발점부터가 문제가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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