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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당이 생긴다니 정말 마음 설레는 일 아닌가. 행정부 내에 여성가족부가 정부 부처로써 존재한다는 것이 주는 의미가 있잖아.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 여성의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 원내진출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런데 여성인권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여성의당은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여성의당이 아마도 정치권에 큰 파란을 일으키지 못하리라 생각하겠지.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 후보만 낼 거라고 하는데, 그마저도 70만 표를 얻어야 비례대표 1번 후보가 당선될 수 있음.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소수정당이 원내 진출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지.

여성의당이니 여성인권상승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고, 지역정당도 아니고, 조직화한 노조가 밑받침해주는 것도 아니고. 확장성에는 한계를 갖고 있지. 그래도 최대한 확장해야 한다고 봄.

게다가 트랜스젠더 배제 논란도 있고. 여성의당 다음 카페에 들어가면 괜찮은 여성의제들이 많은데, 트랜스젠더 이슈도 몇 가지 있음. 대부분이 트랜스젠더 배제를 원하는 TERF(트랜스젠더 배제 급진 페미니즘)의 논조를 가지고 이야기함. 창당 준비 워크숍을 다녀온 분이 트랜스젠더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트윗에 적기도 했고. 그러자 트랜스젠더 혐오를 외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젠더 배제라니 안심하고 입당할 수 있다면서 결집하겠다는 뜻을 나타냄.

솔직히 여성의당인데 트랜스젠더 이슈에 취하는 입장이 왜 이렇게 중요해졌는지 모르겠음. 그리고 나는 트랜스젠더 배제 입장을 취하면 여성의당의 정치적 입지가 불리해진다고 생각함.

일단 표 계산에 좋지 않음. 비례에서 70만 명의 유권자가 여성의당에 투표해야 하는 상황임. 한국은 평등선거를 지향하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의 표나 시스 젠더의 표나 동등한 가치를 가짐. 불매운동과 달리 더 많이 쟤네가 안 사주면 우리가 더 많이 사주겠다는 논리가 먹히지 않아. 모두 한 표씩만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정당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애쓰는데, 투표해주겠다는 유권자를 내치는 정당이라니요.

정당은 정권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치집단이니만큼 당연히 국민 모두를 포용해야 함.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 나에게 투표한 지지 세력만 챙기겠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트랜스젠더도 국민이기에 어쨌든 그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텐데, ‘너희는 제대로 된 국민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옳지도 않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음. 정책 토론회에서 상대방이 트랜스젠더도 국민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데 아니다고 말하는 정당에 부동층이 표를 던질 것 같나.

현실적으로 여러 당에서 입당 제의가 온다면 굳이 여성의당에 입당하지 않겠지. 여성정책을 꾸리고 싶어도 더 큰 정당에 가서 일하는 것이 더 힘이 실리니까. 상대적으로 인지도나 정치력이 떨어지는 후보를 영입해야 하는데, 트랜스젠더 배제 입장을 취해버리면 영입할 수 있는 인재의 폭이 더 좁아짐. 인권 변호사 출신이 트랜스젠더 배제를 외치는 정당에 입당하겠나.

여성의당이 다수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 결국 다른 정당과 연합하면서 정치를 꾸려나가야 하는데, 트랜스젠더 배제 입장을 취하는 것은 미래통합당 보다 더 우파적인 생각임. 트랜스젠더 배제를 적극적으로 외치는 정치세력은 보수 우파 기독교 세력인데 그들은 기독교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나. 결국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는 결과를 낳고 운신의 폭도 좁히는 결과를 낳을 텐데.

트랜스젠더 배제로 얻는 지지자가 더 많다는 주장을 펼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문꿀오소리들은 자신들이 구애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서 지인에게 밥 사주면서 우리당 찍어달라고 읍소하지만, TERF들은 오로지 부동층처럼 구애받는 입장에서 당을 휘두를 생각만 하지 다른 사람들이 여성의당에 표를 던지도록 하는 방법이 무언가를 고민하지 않던데. 당의 확장성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지를 고민하는 집단임.

그리고 딱히 TERF들이 충성도 높은 집단도 아니고. ‘여성 의제를 통과시킬 수 있으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입장이 아니라 트랜스젠더 배제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원내입성하지 말라는 입장이더라고. 벌써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손절할 각을 재고 있는데. 이게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신생 정당에 도움이 될까.

정치판에서 오래 굴러서 정치 논리를 이해해주는 집단도 아니고. 정치적 지식이 없으면 차라리 TERF가 비웃는 남자 아이돌 팬층이나 문꿀오소리 같은 지지자처럼 일단은 무조건 밀어주는 지지층이 원내 입성하고 정치적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텐데. TERF는 그런 지지층이 아님.

일단 창당하는 것이 중요해서 화력 좋은 TERF들 입맛에 맞게 또는 입맛에 맞는 것처럼 보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너무 근시안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함. 이왕 여성의당이 출범하면 잘 되었으면 좋겠음.

그리고 다른 정당에서도 여성정책을 잘 내놓아도 굳이 여성의당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그 이유를 뭐라고 설명할 것인지도 궁금함.

한국은 정당이 수없이 많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나라인데, 여성의당 창당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여성의당을 진지하게 정치세력화하려고 하는지도 궁금하고. 페미니즘 붐에 잠깐 얹혀서 이력서 한 줄 추가하기 위한 당인지 아닌지도 궁금하고. 사실 이게 진짜 궁금함.

페미니스트들이 지금 양쪽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고 있는데, 어느 한쪽을 택할 것인지 통합해서 같이 갈 생각을 하는지. 어느 한쪽을 택한다면 반쪽짜리 여성의당이 되는 셈인데 말이죠. 투명하게 입장을 공개하는 게 옳은 것이 아닌지.

그냥 현재로서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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