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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살아


나는 어릴 때부터 죽고 싶어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 말을 하니까 이모가 ‘너 어렸을 때 칼 들고 죽어버리겠다고 해서 다들 놀란적 있어, 기억나?’라고 묻더라. 나는 그런 기억이 없지만 그랬을 것 같다.
 
삶에 애착이 강한 사람이 있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이겨내면서 사는 캔디형 인간도 있고 온 국민에게 좀 죽으라는 저주를 받아도 절대 자살 안하는 조두순 같은 인간도 있고.
 
나는 그 반대인 유형인가봐. 솔직히 살면서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엄마 치마폭에서  안전하게 살았으니까.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더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도 살고 싶지 않더라. 만성적인 우울증일 수도 있고 타고난 기질 같기도 하다.
 
억지로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살았다. 가족들을 자살생존자로 만들기 싫어서 그냥 살아있었다. 박원순처럼 자살에도 성공하는 사람을 보면서 역시 성공한 사람은 자살도 잘한다고 부러워하며 자책하기도 했다.
 
정신과에 다닌지 8년차. 상담도 많이 받았다. 상담과 약물치료에 들인 비용이 얼마인지 모른다. 우울증 때문에 날린 기회들과 낭비한 돈을 생각하면 나를 살리기 위해 이만한 돈을 쓴 부모님께 미안할 지경이다.
 
다행히 요즘은 죽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울증은 거의 완치되었고 일상생활도 무리없이 해나가는 중이다. 다만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니까 문제지.
 
그런데 아직도 억압이 남아있는지 누군가 자살소동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너만 죽고 싶은 줄 알아? 다 죽고 싶은데 억지로 살아! 자살할거면 조용히 자살해. 자살할 용기도 없는 새끼가!’라는 글을 쓰고 싶어서 손가락이 난리난다. 남들처럼 자살이나 자해하는 사람을 순수하게 동정하지 못하겠다.
 
그래, 나는 자살소동을 벌이는 사람이
1. 자살 욕구를 참고 있는 사람들의 자살 욕구를 더 크게 만들고
2. 주변 사람들이 뒷수습하도록 만들어서 민폐를 끼치고
3. 자살에 성공하지도 못하는 무능력자 같고
4. 극도의 수동공격으로 다른 사람의 멘탈을 망가뜨리고
5.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싫다.
 
그냥 자살하면 존경이라도 할텐데, 힘들다고 징징거리면 기분 좋을 때는 감정쓰레기통 노릇이라도 해줄텐데, 자살 협박은 어쩌라고 싶다. 모르겠다. 이게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자살 소동 벌인적 있다고 하는 사람은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근데 이런 사람이 나만 있는게 아닐걸.
 
그러니까 자살소동 벌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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