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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타 엑스 형원


상대를 설득하고 싶으면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길 수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데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살펴보면 자신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임. 나는 정의의 사도이고 너는 모자란 사람이라는 믿고 싶은 전제로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임. 좌우 논쟁에서부터 최근의 페미니즘 논쟁도 그렇고 정치적 논쟁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임.

최근에 내가 쓴 글 2019/10/05 - [페미니즘] - 페미니즘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에 '방탄 팬 활동 많이 하시라'고 댓글이 몇 개 달렸는데 나는 이게 방탄소년단 팬 활동을 하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님. 방탄 팬 활동을 그만둔 지도 오래되었고. 내 삶의 목표대로 사는데 내 행동과 사고 모두를 여성주의적으로 할 수는 없다는 글임. 굳이 방탄의 예를 든 건 방탄 팬 활동이 트위터에서 페미니스트의 자세로써 논쟁이 되었던 이슈 중 하나이기 때문이고. 댓글을 단 사람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내가 글을 쓴 목적을 깎아내린 거지.

내 트위터 친구는 조국을 비판했다가 여러 명의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사이버 불링을 당했어. 조국을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일베충 등등의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음. 역시 조국을 비판한 이유를 저급한 것으로 깎아내린 거.

이런 식으로 반대편을 선택한 이유를 '그 사람에게 뭔가 하자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몰아가는 것은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는 좋지만, 세를 확장하기에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일베충이라고 아무리 공격한들, 그 사람의 투표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면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라는 것을 잊은 것.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를 금방 구할 수 있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동지도 금방 구하는 세상인데 뭘.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심함. 이런 방식이 혐오감만 확산시키는 거 아닌가. 정치 혐오가 발생한 이유에 정치 과몰입 인간들이 내뱉는 과격하고 무례한 언사도 한몫할 걸.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부정적인 상처를 받는 사람 숫자를 늘리는 게 우리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겠어. 부정적인 영향만 끼침.

다른 사람이 설득한다고 설득당하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님. 자신을 설득한 상대에게 깊은 신뢰가 있어야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수 있음. 인간은 그다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가 아님. 이성적으로 맞는 말을 해도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설득이 잘 안 됨. 그리고 말은 만들기 나름이라서 자신의 진영에서 괜찮은 논리를 만들어서 가져오면 그만임.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서 상대를 잘 파악한 뒤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득해도 설득이 쉽지 않음. 그런데 고작 한다는 말이 일베충이냐는 인신공격 수준이라면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게 당연함. 자신을 인신공격하는 사람에게 신뢰를 못 느끼는 것도 당연함. 상대방이 왜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건지 진지하게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공격부터 하는 건 정말 쓸데없는 짓이란 말임.

그리고 세상은 엄청나게 넓고 똑똑한 사람도 엄청나게 많음.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지척에 널려있는 건 경험해보면 알 수 있음. 나보다 잘난 사람이 우리 진영에는 물론이고, 상대 진영에도 있는 게 당연하다는 말임. 근데 이걸 생각 못 하는 사람이 엄청 많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믿거나 잘난 사람은 전부 다 나와 같은 편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음. 그래서 나와 반대편 사람이 자기보다 잘났을 확률을 계산 못 하고 무조건 가르치려고 덤비는 경우도 많이 봄. 일단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도 당연한 건데 말이지.

어떤 사람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건 그 사람을 설득하고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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