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자가 다 사라지면 보토피아가 올까?

내 Peing에 재미있는 질문이 들어와서 쓰는 글. '남자가 어느 날 모두 사라진다면 여성들만의 유토피아가 생길까?'라는 질문이거든. 이 질문을 읽으면서 《Y: 와이 더 라스트 맨》이라는 책이 떠올랐어. 이 책의 설정은 이래.

"남자는 물론 수컷 포유동물이 순식간에 사라진 지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 요릭 브라운(Yorick Brown)의 이야기. 제목의 Y는 Y염색체와 주인공 이름의 첫 글자를 의미한다. 여자들로 가득한 세상에 혼자만 살아남은 남자가 된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독한 재앙이 될 거라는 무서운 상상을 그려 냈다. 발표 당시 미국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독자들 사이에서 실사화를 원하는 만화 1순위로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2002년. 급작스러운 원인불명의 괴질이 지구를 휩쓸어 한순간에 지구상의 모든 수컷 포유류가 전멸한다. 95% 이상의 비행기 파일럿과 트럭 운전사들, 선박의 선장들이 사망했으며, 강력범 수감자의 92% 역시 사망했다. 전 세계 99%의 기술자, 전기공 건설노동자가 사라졌다. 85%의 국회의원이 죽었고 가톨릭 신부, 이슬람 이맘, 정통 유대교 랍비 100%가 사망했다. 남자들이 사라지자 남성 위주로 굴러가던 현대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엉망진창이 됐다."

읽고 나니 어떰? 강력범죄자들 대부분이 남성이기에 강력범죄자들이 죽어서 좋기는 하겠지만, 글쎄. 지금 중요한 역할은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남자들 역시 죽어버린다는 뜻이잖아. 티스토리 서버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남자일 것이고, 인터넷망을 관리하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남자일 것이고, 전기 수급 현황을 관리하는 사람도 뉴스를 보니까 남자가 더 많던데. 내가 티스토리에 이런 글을 쓰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남자들의 역할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해외여행은 어떻게 다니냐. 국내 항공사 파일럿들 대부분이 남자인데.

그러니까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뭐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남자들이 사회의 중요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도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도록 더 많은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들, 리스크는 줄이면 줄일수록 좋은 것 아니겠어? 지금 상황에서 남자들이 순식간에 절멸한다면 그 세상은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닐 것. 사람을 교육해서 어떤 업무를 맡도록 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그리고 인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잖아. 경제학에서 인구가 많냐 적냐로 시장 크기를 판별하고, 지금 칭기즈칸이 사람을 많이 죽여서 소빙하기가 왔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온난화 속도는 느려지겠지. 성 평등이 완전히 달성되어서 여성과 남성의 분업이 공평한 상황에서도 인구 절반이 사라지면 패닉이 올걸?

'남자들이 다 사라지면 유토피아가 온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음. 어쨌든 간에 남자든 여자든 사회에서 역할들을 맡고 있고 그 역할들을 맡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큰 손실인걸.

반대로 '여자들이 다 사라지면 유토피아가 온다'는 말도 마찬가지. 여자가 없는 세상이라. 《파리 대왕》을 읽어보면 남자들만 남은 세상이 어떤 꼴로 돌아갈지 대충 예상할 수 있음. 인간 본성을 그린 책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남녀가 동수였으면 이야기 전개가 이렇게 참혹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더라.

여성에 친화적인 사회일수록 약한 남자도 살기 쉬움. 여성이 사라진 세계에서 굳이 약한 남자를 위해서 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될까?

내가 사회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식견이 둘 다 부족해서 더 썰을 풀어낼 수는 없지만 '순식간에 남자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과 '순식간에 여자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 둘 다 지옥일 거라는 점은 확신합니다.

《Y: 와이 더 라스트 맨》과 《파리 대왕》 둘 다 좋은 책이니까 안 읽어본 사람 있으면 읽어봐.

 

2020/02/12 - [페미니즘] - 페미니스트 그만두고 사람부터 되기로 했음

2019/10/31 - [루이후기] - 갑자기 보험에 꽂혀서 일주일간 보험만 알아본 후기

2019/05/14 - [루이후기] - 도브 비누(뷰티바)로만 6개월 동안 씻은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