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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소 희진

남성 혐오(이하 남혐)와 페미니즘(이하 페미)를 섞어서 사용하고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답답해서. 남혐과 페미는 동일어가 아니야. 그리고 별 관계도 없고.

누군가는 주장하겠지. '남자와 여자 편을 갈라놓고 그중 여자 편을 들어서 여자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페미'라고.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페미는 그렇게 편 가르기 하는 유치한 싸움도 아니고, 편 가르기를 하면 여자가 남자보다 불리해지기 때문에 그래서도 안 됨. 그리고 페미는 인권 관련 운동인데 무슨 파이 싸움이니. 인권 상승 운동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데.

먼저, 남혐을 잘하는 사람이 페미에 더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더라. '남자를 싫어한다 = 남자 편일 리 없다 = 그러니 여자 편'이라는 논리지. 일단 남자를 싫어한다고 여자 편이 되지 않아. 남자를 10만큼 싫어하고 여자를 100만큼 싫어하는 경우도 있거든. 그리고 여자를 좋아하고 남자를 싫어한다고 여성 인권 상승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고. 내가 만약 편집증이 걸려서 남자가 앉았던 자리는 무조건 소독해야 하고, 남자가 있는 수험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남자를 싫어한다고 여성 인권 상승에 도움이 되겠니? 남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여성 인권을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고. 故 이희호 여사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랑하면서도 한국 여권 상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잖아.

트위터에서 누가 그런 말을 하더라. '기혼 여성은 남편과 다른 여성이 승진 경쟁할 때 자기 남편이 승진하기를 원할 것. 여자보다 남편이 우선이므로 페미가 아니다'라고. 아니요. 페미가 추구하는 세상은 여자와 남자가 경쟁할 때 여자 편을 드는 세상이 아님. 성별, 종교, 인종, 나이, 언어, 성 정체성 등등과 상관없이 더 유능한 사람이 승진하는 세상임.

'축구 경기를 할 때 한국이 이기기를 바라? 일본이 이기기를 바라?'라는 질문만큼 유치함. 이런 질문에 대답은 '공정하게 경쟁해서 승패가 결정되기를 바란다'가 더 맞는 대답임. '한국이 이기기를 바라'가 아니라. 페미는 편을 가르고 여자 편을 드는 사람이 아니라 성별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사람임. 내가 남편의 승진을 원하든 다른 여성의 승진을 원하든 공정하게 승진자가 결정되는 세상을 만들면 된다고.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음. '너는 너에게 유산 남길 아버지랑 다른 여성 중에 누가 돈을 더 벌었으면 좋겠어?'라고. 페미니즘이 인종 차별 운동 등의 다른 인권 운동과 다른 점은 남성과 여성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임. 대부분의 여성은 아버지가 있고, 가족과 친척 중에 남자 형제가 있고, 남자와 같은 민족을 이루고 있음.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페미는 어려움. 근데 그렇다고 남혐하는 여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 

그리고 파이 싸움으로 갈 이유가 없음. 미국에서 유색 인종의 지위는 점점 높아져 옴. 그렇다고 백인들의 지위가 더 낮아짐? 백인들의 소득이 감소함? 신분제가 존재하는 사회보다 신분제 없이 평등한 현대가 더 부유함. 인권이 상승할수록 경제 참여율이 높아지고 경제 규모가 커져서 사회가 더 발전하는 것임. 여성 인권이 상승하면 남성들의 파이를 빼앗을 거라고 생각함? 한국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낮음. 출산율이 더 낮아지는 와중에 한국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 그건 한국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일임.

성별과 관계없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자는 운동을 왜 편 가르기 운동으로 격하시키는지 알 수 없음. 그렇게 사고하니까 숙명여대에 트랜스젠더 한 명이 입학한다고 했을 때 쟤는 우리 편 아닌데 왜 쟤의 교육권에 신경 써야 하냐, 쟤는 남자 편에서 보낸 스파이다, 여자들의 기를 꺾어 놓기 위해 트랜스 젠더 인권에 신경 쓰는 척한다 등등의 우스운 말들이 나오지.

남혐과 페미를 섞어 쓸 때 문제도 발생함. 남혐과 페미는 같다고 우기니까 '한남 유충'과 같은 남혐 단어를 페미들의 언어라고 주장하는 것임. 남자아이는 어쨌든 커서 여자 편이 안 될 테니까 미리부터 혐오해서 배제해야 한다며 '한남 유충'이라는 단어 사용을 주장함. 아니, 유·아동을 성차별하지 않는 시민으로 길러낼 생각을 하는 것이 우선 아님? 그렇지 않으면 학교에서 왜 성 평등 교육이 있겠어. 그리고 왜 성폭력 방지 교육이 있겠어. 사회 성원들이 페미를 접하고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기보다는 배제하기를 더 원하면 그 운동이 효과가 있겠나.

그리고 사회 개혁 운동이라면서 사회 구성원인 남성을 그렇게 배제하고 혐오하면 그 운동이 효과가 있겠니? 한국은 보통 선거제를 채택하고 있어요. 남성도 여성도 똑같은 한 표를 지닙니다. 제도화된 정치권에 진입하고 싶다면서. 근데 남혐하면서 남자에게 표를 달라고 요청하는 건 좀 염치없지 않니. 그러면 '여자들이 다 함께 여자들을 위한 당을 찍으면 된다'라고 주장하겠지. 근데 여자들도 사람인지라 남자랑 인간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만으로 '좆빨러'라고 모욕하는 여자들에게 표를 주지는 않거든요. 자존심이 있지. 적어도 유대 관계가 있는 남자들은 '좆빨러'라고 대놓고 모욕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나는 여자니까 내가 너를 모욕해도 너는 나를 지지해야 해'라는 사고방식은 너무 어처구니없고요.

여성 운동하다가 정치계로 투신한 페미니스트들이 그렇게 말하더라. '논쟁으로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 현실을 바꾸는 것은 또 다른 문제더라'라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성들이 사는 사회이지만 남성들이 사는 사회이기도 해. 남자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렇게 아깝니.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이 남혐하면서 남자 유권자 표는 거부하든. 결국, 남자와 협력하기도 해야 해. 식민지 철폐에 지배국 지식인들이 동조했던 것처럼, 일부 남성은 성차별 철폐에 동조하겠지. 근데 남혐은 이런 가능성을 더 줄인다고. 

남혐러가 과연 여성 인권의 문제에 도움이 될까도 마찬가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 시도에 제일 크게 분노하는 사람이 과연 일본의 야욕을 가장 잘 저지하는 사람일까? 분노는 외교 문제에 큰 도움이 안 돼. 얼마나 영리하게 외교적 수단들을 잘 활용하느냐의 문제거든. 여성 인권도 남혐을 얼마나 하느냐와는 관계없어. 여성 인권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영리하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하지.

여자 편, 남자 편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받지 않을 기회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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