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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


트위터에서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차단하고 숨김 처리를 해도 계속 말썽을 일으켜서 이야기가 들려오는 바람에 짜증스러웠다. 그 사람에게 느낀 분노를 그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B5 노트패드를 꺼내서 그 사람의 싫은 점을 목록형식으로 적었다. 금방 종이 한 페이지가 가득 찼다.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에 걸리지 않게 이 글을 게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누군가도 '루이보스티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으로 나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내가 못나서 남한테 피해준 거 있냐'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러고 나서 종이를 보니 내가 못나게 살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 사람도 못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을 정당화하려고 그 사람의 못난 점을 종이에 적은 밑바탕에는 '못난 사람은 미워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어서 그랬다. 근데 그 사람이 못나게 태어나고 못나게 살고 싶어서 그랬겠냐. 그 사람이 못난 데에 그 사람의 책임도 있지만, 외부 요소도 작용했을 터이다. 나와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서 내 눈에는 못나 보이지만 자신은 만족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비가 되기 위해 거치는 애벌레 시기일 수도 있지.

잘나면 좋지만 잘나야 하는 의무는 없다. 잘난 것은 선이고 못난 것은 악이라는 생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쓸데없이 감정 낭비를 하고 있나. 지금 못났으면 자신의 못남을 인정하면서 살든가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이걸 못해서 자기 비하느라 마음고생 하거나 못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해서 애꿎은 남 탓이나 사회 탓이나 하면서 억울한 분노를 타인에게 쏟는 경우가 많잖아. 못나면 못난 대로 행복하게 살면 되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으면.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나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았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녔을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언짢았지만 내 기분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괴롭힘당한 사람은 내가 아닌데 내가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그를 공격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를 내 인생에 들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나를 보호해야 하는데 내가 그를 공격하면, 오히려 그가 방어하겠다는 이유로 나를 공격할 구실을 주는 셈이 된다. 그 사람이 못났다고 미워해서 내가 얻을 것이 없음.

그래서 나는 못난 나 자신도 사랑하고 다른 못난이들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마음 편히 살려고. 나는 잘살려고 노력해서 잘나게 되겠지만 미래의 내가 지금의 못난 모습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났든 못났든 어쨌든 지금의 내가 존재하니까 미래의 나도 존재할 수 있잖아. 그 사람도 성공할 거라고 말했으니 지금의 못난 그의 모습도 그 사람의 과정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싫은 이유가 적힌 종이를 찢으면서 못난이 동지로서 그 사람이 잘사시기를 기원했다. 건투하시길. 내 삶에 끼어들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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