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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 아이린, 웬디

페미 그만두기로 했으니까 이야기할게. 나는 내 또래의 여자를 무서워한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생각해보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경험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왕따 경험이 있던 나는 왕따 당하기 싫어서 지랄맞은 애의 감정 쓰레기통 노릇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사람은 어떤 이유로든지 지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본인이 말실수하면 듣는 사람이 잘 알아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내가 말실수하면 말하는 사람이 잘 알아들어야 한다고 우기고 지가 큰 소리로 화내면서 몇 시간을 지랄하는 건 정당한 분노고 나는 삐지기만 해도 네가 뭘 잘했다고 삐지냐고 지랄하심. 그때 나는 멍청해서 '루이가 착해서 ㅇㅇ랑 같이 다닌다'는 말을 들어도 그게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왕따로 혼자 지냈던 시절이 초등학교 6학년 때보다 더 마음 편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트집 잡아서 자신의 지랄을 정당화하는 애들을 보면 두렵고 분노가 밀려온다. 수틀려서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지랄하는 거면서 온갖 이유는 다 갖다 붙인다. 블로그에도 썼지만 자살 협박하는 사람을 보면서 짜증 나는 이유도 그 때문임. 자살 협박은 고강도의 위협이고 지랄의 최종형태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체화해서 정확히 전달하지도 못하고 받아낼 방법이 뭔지 생각하기 귀찮으니까 드러눕는 거지. 자신의 요구가 정당하지 못하니까 위협의 강도를 높이는 것뿐. 동정해줄 이유가 전혀 없음.

'충분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지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사람의 감정은 외부요인으로 조절할 수 없음. 자신의 분노를 안/못 조절하는 사람한테는 모든 사과가 다 불충분하게 느껴짐. 사과해봤자 트집 잡을 구실만 만들어줄 뿐임. 요새 사과문 쓰면 사과문을 잘 썼네 못 썼네 진심이 느껴지느니 아니니 별 트집을 다 잡으면서 무성의한 사과로 자신을 모욕했다고 더 화내잖아. 방법 없음. 상대방의 사과조차 자신의 분노를 키울 땔감으로 쓰는 사람을 굳이 상대할 필요가 있는지? 오히려 만만하게 보일 뿐임. 무시가 답.

최근에 있었던 일을 곱씹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어서. 친구가 내가 오랫동안 제대로 된 직장 없이 빈둥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봄. 내가 돈 빌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빈둥거리는 삶이 힘들다고 징징댄 것도 아니고, 나는 빈둥거리는 삶에 안주하며 편안히 사는데 왜 그렇게까지 분노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화내더라. 감정적으로 격양되어있어서 일단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해서 '화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냥 끝내려고 하니까 자기 말에 반박 못 한다고 화냄. 내가 의지가 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고 하니까 자기 연민으로 빠지지 말라고 화냄.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화낼 거면서 말하라고 화냄. 아니,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차분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지랄할 거면서 반응을 보이라는 건 도대체 뭔데. 지랄은 하고 싶은데 생으로 지랄은 못 하겠으니까 나보고 자기가 지랄할 구실을 만들어달라는 거잖아. 사람 미치게 해.

나는 내 또래 여자들이랑 싸운 경험이 별로 없거든. 나는 내가 착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위의 사건 때문에 내가 내 또래 여자들을 무서워해서 내가 피했다는 사실을 깨달음. 끝이 없는 지랄. 연애할 때 남자들이 싸우기 싫다고 싸움 회피하잖아. 그 심정이 이해됨.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여자 진상 싫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됨. 탈페미하고 내 안의 여혐을 인정하기로 하니까 나 자신이 더 잘 이해되네.

여자들이 지랄과 정당한 분노를 잘 구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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